[기자수첩]메모리 호황이 끝나기 전에

[기자수첩]메모리 호황이 끝나기 전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실적을 본 지인은 “메모리가 아니라 돈을 찍어 내는 공장 같다”면서 “돈을 저렇게 찍어 내기도 힘들 것”이라고 감탄했다. 그는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모습에 깜짝 놀라워했다. 삼성과 하이닉스뿐만 아니라 장비와 재료 등 후방산업계 역시 메모리 호황에 힘입어 최고 실적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이 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경제 사정은 대부분 예전보다 나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반도체뿐이다. 1분기 매출액 기준 상위 10대 기업(공기업, 금융사 제외)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35% 이상 늘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1조원 가까이 이익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계에선 '반도체 착시 현상'을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가 나왔다.

가까운 디스플레이 패널 분야만 봐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중국과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이 어려워지고 있다. 중국 BOE가 10.5세대 라인을 본격 가동하자마자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값은 물론 60인치대 대형 TV 가격도 쑥쑥 내려가고 있다. 공급 과잉으로 몸살을 앓은 태양광, 발광다이오드(LED) 산업의 길을 LCD가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메모리도 그리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얼마 전 중국 관영 CCTV 저녁 뉴스에는 칭화유니그룹 산하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생산 라인을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모습이 등장, 관심을 모았다. 며칠 후에는 중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3000억위안(약 51조원)을 모집하는 펀드 조성 계획이 발표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은 석유보다 반도체 수입량이 더 많은 나라다. 반도체 없이는 중간재나 완성품 수출이 어렵다. 중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에 '돈폭탄'을 던지는 이유다.

중국에 견주면 한국은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 일부 정부 관계자들은 “잘나가는데 무슨 도움을 더 줘야 하냐”고 말한다. 아니다. 가장 잘나가는 산업이기 때문에 '초격차'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허리가 취약하다. 장비, 재료, 부품 생태계를 키우고 그에 맞는 고급 인력도 쏟아내야 한다. 대기업이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호황이 끝나기 전에 정부 차원의 초격차 계획이 수립돼야 한다. 그래야 추격을 따돌리고 한발 멀리 나아갈 수 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