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교수포럼의 정책 시시비비]<2>R&D 대혁신, 어떻게 추진해야 할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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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말 과학기술자문회의가 열렸다. 사람 중심 과학기술, 국민을 위한 과학기술, 투자 효율화와 혁신 성장을 지원하겠다는 보고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구개발(R&D) 투자 성과를 높이도록 혁신 과정에 현장 목소리를 폭넓게 수렴하는 한편 R&D 혁신 과제 달성 정도를 매년 점검하고 방향을 제시해 달라고 주문했다.

대통령 지시에 자문회의와 혁신본부도 잰걸음에 나섰다. 올 1월 말 혁신본부는 사람 중심 과학기술 정책 실현을 위한 세 가지 추진 전략으로 연구자 중심, 시스템 혁신, 국민 체감이라는 혁신 방안을 제시했다. 자문회의는 2월 하순에 회의를 열고 R&D 혁신 방안 점검 계획을 논의했다.

무엇보다 '사람 중심'과 '국민을 위한'이란 두 키워드는 적절해 보인다. 이제 어떻게 구체화하고 실행할 지가 남았다. R&D 대혁신이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첫째 R&D 대혁신의 목적이다. 사람 중심 과학기술은 연구자가 도구화 되지 않는, 주체되는 과학기술 정책을 말한다. 국민을 위한 과학기술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과학기술의 역할을 뜻한다. 둘 다 바람직한 목표다. 그러나 연구자가 원하는 것과 국민이 바라는 것에는 차이가 꽤 있기 마련이다.

물론 두 목표의 접점에 자문회의가 말한 지진·활성단층 연구 같은 것이 있지만 이런 공약수가 그리 많지는 않다. 여기에 혁신 성장이라는 요소까지 끼어들면 산식은 더 복잡해진다. 자문회의와 혁신본부에 던지는 첫 번째 주문은 R&D 대혁신이 추구하는 과학기술 정책의 목표를 명확히 했으면 하는 것이다.

둘째 '국민을 위한' 과학기술을 어떻게 실천할 것이냐다. 지난 정부에서도 유사한 시도가 있었지만 정작 제 자리는 찾지 못했다. 가장 큰 실패 원인은 목적 자체보다 실천 방법이었다. 이제껏 과제를 기획하고 예산을 배정하는 것은 정부와 전문가 몫이었다. 국민 위한 정책이면 기획 방식부터 다를 법하다.

국민배심제를 원형으로 참고해도 좋다. 정부 의지만 있다면 국민 생각을 담을 방법은 여럿 있다. 최근 추진된 몇몇 R&D 기획에는 빅데이터 방법론인 데이터마이닝과 텍스트마이닝 기법이 활용됐다. 전문가가 모여서 브레인스토밍하고 과제를 도출하는 대신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에 폭넓게 공유된 국민 의견에서 인사이트를 도출하고 미래형 R&D 과제를 설계했다. 두 번째 조언은 '국민을 위한' 과학기술을 함에서 '국민에 의한' 과정과 방법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셋째 R&D 대혁신이 추구하는 과학기술 정책의 정체성이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과학기술 혁신을 강조했다. 지난 정부 때도 그럴듯한 구호는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아는 사람은 적었다는 우스개도 있었다. 문 대통령이 말하는 혁신 성장, 자문회의가 제안한 '사람 중심'과 '국민을 위한' 과학기술이 의미하는 바가 분명해졌으면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자문회의나 혁신본부가 고민해야 할 일이겠지만 사람 중심 과학기술과 국민을 위한 과학기술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공감'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이 그 주체되는 연구자와 공감하지 못한다면, 과학기술이 그 주인되는 국민과 공감하지 못한다면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다.

연구자가 주체가 되지만 국민이 소외되지 않는 것, 연구자와 국민이 공감함으로 가능해지는 새로운 혁신 공간을 찾아가는 것이 문 대통령이 말하는 R&D 대혁신이라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공감과 포용, 진지하게 국민 목소리를 경청하는 실천 과정 정도면 새로운 혁신 시스템이라 이름 붙여도 부끄러울 것이 없겠다.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동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