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기술이 우수한데 왜 투자를 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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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기술력을 보유해 자금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왜 투자하지 않습니까?”

IR 데모데이가 끝나고 사업 아이템을 발표한 한 창업자가 내게 다가와서 조용히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다. 이처럼 많은 창업자가 기술이 우수하고 전문가가 모여 있다고 여길수록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투자자 생각은 다르다. 기술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주변 환경이 받쳐 줘야 한다.

2008년 12월 TG삼보컴퓨터는 '루온 모빗'이라는 휴대용인터넷기기(MID)를 출시했다. 인텔 아톰 CPU, 4.8인치 스크린, 30GB 저장 공간에 윈도 XP 운용체계를 탑재해 이동 중에 윈도 구동과 인터넷·동영상·MP3·인터넷뱅킹 서비스를 지원했다.

얼리어답터 관심에도 제품 인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일반 소비자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 한국형 아이패드라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루온 모빗 실패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루온 모빗은 당시 국내에서 아톰 CPU 매출과 명분이 필요하던 인텔코리아 요구, 삼성이나 LG에 없는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겠다는 삼보컴퓨터 간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전략 제휴로 출시된 태생상의 한계도 실패 요인에 한몫 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고객이 원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먼저 작은 화면에 맞는 애플리케이션(앱)이 없었다. 제품을 처음 봤을 때 당혹스러움이 떠 오른다. 4.8인치 작은 화면에 윈도 바탕 화면이 그대로 들어갔다. 17인치 PC 모니터에 보이는 윈도 바탕 화면이 사이즈만 작아진 상태로 나타났다.

손톱으로 영점 조정을 잘못하면 정확히 터치하기 어려웠다. 현재는 앱 형태로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 맞게 배열돼 터치하기 쉽지만 당시 루온 모빗은 PC용 아이콘을 그대로 작은 화면에서 보여 줬다.

둘째 통신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당시 모바일 무선통신 최고 속도는 10Mbps라고 했지만 실제는 2~3Mbps 수준이었다. 대부분 통신 환경에서는 300~400kbps 수준에 불과했다. 작업할 때마다 새로운 화면이 스크롤되는 것이 눈에 보일 지경이어서 손으로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통신요금도 비쌌다. 와이파이 존도 많지 않았다. 말이 모바일 기기지 편리하게 사용한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터치스크린 방식이 아니었다. 화면에 힘을 주어 꾹꾹 눌러야 하는 압력식 액정 화면을 채택했다. 터치 화면에서 손가락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이 제한됐다. 지금이야 모든 스마트기기가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루온 모빗은 세 가지 문제점 때문에 TG삼보컴퓨터와 인텔코리아라는 브랜드 파워를 등에 업은 혁신 제품이라는 타이틀 속에서도 시장에서 사라졌다.

모든 사업에는 때가 있다. 기술과 주변 환경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시점이 성공 타이밍이다. 처음 루온 모빗을 출시해서 많은 직원이 삼성전자와 LG전자에도 없는 최신 기기니 당연히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TG삼보컴퓨터는 벤처로 시작한 PC 전문 기업답게 여러 가지 창의 및 혁신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새로운 제품과 시장을 열고도 확장하지 못했다.

요즘 최신 기술과 혁신 제품이라면서 제품만 출시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창업자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 대기업도 환경이 받쳐 주지 못하는 최신 기술로는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안창주 수원대학교 창업지원단 교수, 엔슬협동조합 이사
<안창주 수원대학교 창업지원단 교수, 엔슬협동조합 이사>

안창주 수원대 창업지원단 교수, 엔슬협동조합 이사 root1@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