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과기혁신본부, 성과·한계 분명한 1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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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국가 연구개발(R&D) 컨트롤타워로 출범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첫 돌을 눈앞에 뒀다. 'R&D 예타 권한 이관' 'R&D 지출한도 공동설정' 등 당초 계획한 기능을 일부 확보하지 못한 채 출범했지만 낡은 R&D 패러다임 전환에서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R&D 투자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투자 혁신을 주도하고 R&D 관리 시스템 개선으로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앴다. 반면 범 부처 정책 조율 과정에서 조정력 한계를 드러냈다. 조직 정비 필요성이 대두되지만 직제 신설 등을 놓고 정부 내 이견에 부딪혔다.

[이슈분석]과기혁신본부, 성과·한계 분명한 1년

◇우여곡절 출범, 1년 성과는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7월 과학기술정책 총괄, R&D 사업 예산 심의·조정, 성과평가를 전담하는 '과학기술혁신본부(차관급)'를 신설했다.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위상을 과기혁신본부에 부여했다.

과기혁신본부는 약 20조원에 달하는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조정권한이라는 막강한 힘을 쥐고 태어났지만 청와대, 정부가 제시한 청사진에는 미치지 못했다. R&D 예비타당성 조사 권한을 기획재정부에서 과기혁신본부로 이관하고, 지출한도를 기재부와 공동 설정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여야 논의 과정에서 수정됐다. R&D 예타권은 기재부로부터 권한을 위탁 받는 방식으로 정리됐다. 지출한도 공동 설정은 무산됐다. 일각에선 '반쪽출범'이라는 우려가, 한편에선 과기혁신을 위한 최소한의 추동력을 확보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과기혁신본부는 우여곡절 끝에 모습을 갖췄지만 1년 동안 국가 R&D 혁신의 밑그림을 그리는 등 성과를 냈다. R&D 규제 개선을 위해 연구를 저해하고 행정부담을 유발하는 R&D 관리제도와 낡은 관행을 발굴, 개선했다. 1년 단위 평가 폐지, 행정지원 인력이 행정업무 전담 처리, 부처별 연구비 사용기준 일원화를 골자로 하는 '국가 R&D 분야 규제혁파방안'을 마련해 이행했다. 연구자 중심의 자율·창의적 R&D 지원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범부처 R&D 제도혁신을 주도했다. '연구제도혁신기획단을 출범하고 도전적 연구에 적합한 시스템을 마련했다.

R&D 투자 혁신도 성과다. R&D 패키지형 투자플랫폼을 개발했다. R&D 투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인력양성·제도개선·주요정책을 함께 묶은 시스템이다. 올해 자율주행차·미세먼지 등 8개 시범분야에 적용했다.

R&D 예타는 '조사 기간 단축'을 외쳐온 과기계 요구에 따라 절차를 간소화해 조사기간을 줄여 나가고 있다. 대학, 출연(연) 등 연구현장의 행정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17개 부처별로 제각각 운영 중인 연구비관리시스템도 두 개로 축소했다. 부처별 20개 연구과제관리시스템(PMS)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 단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획·평가·성과활용 등 전단계 정보를 공유한다. 부처별로 분산된 연구관리 전문기관의 연구기획평가 기능을 부처별로 일원화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인 R&D 혁신과 관련해선 R&D 관계부처 협의체를 구성해 세부 추진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범부처TF를 구성, 연구관리 전문기관 기능정비계획을 수립했다. 부처별로 별도 운영중인 R&D 관리규정을 단일 규정체계로 전환했다. 오는 9월까지 과제관리시스템 표준화 및 정비를 위해 범부처 과제관리시스템 표준화 구축 방안도 마련한다.

◇한계 드러낸 1년

과기혁신본부는 위상과 역할에 비해 조직이 작다. 본부장(차관) 아래 3국이 직속 배치됐다. 본부장과 3국 사이에서 조직을 총괄 연계하는 실장급 조직이 없다. 이로 인해 지난해 범 부처 정책 조율 과정에서 조정력 한계를 경험했다. 현재 3국 13과 체제는 과기정통부 내 연구개발(R&D) 사업 담당 1차관실보다 작은 규모다. 올해 산적한 과제와 타 부처와의 협상을 감안하면 조직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과기혁신본부는 당장 R&D 혁신 방안 이행, 감독에 나서야 한다. 연구관리전문기관 효율화, 연구과제관리시스템 정비 등 현안이 수두룩하다. 부처에 산재한 연구관리전문기관 기능을 10개 부처 10개 기관으로 재편해야 한다.

연구관리전문기관 통합은 과기혁신본부의 역량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 각 부처, 각 기관마다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하면서, 최상의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

과기혁신본부가 주도하는 범 부처 태스크포스(TF)가 6월까지 세부 정비 방안을 마련한다. 100개 넘는 연구과제 관리 규정을 하나로 통합하는 '(가칭)연구개발특별법'도 제정한다. 기초·원천 R&D 사업 수행 주체를 과기정통부로 일원화한다.

지난 1년이 과기혁신본부의 초기 이륙 준비기간이었다면 앞으로 1~2년은 본격적인 비상을 이뤄야 하는 시기다. 단순한 '출범' 의미를 떠나 구체적인 성과로 과기혁신본부의 필요성을 입증해야 한다.

과기혁신본부가 업무를 총괄하고 대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직제 개편, 증원 등 조직 역량 강화가 필수다. 과기혁신본부장은 일반 차관과 달리 국무회의에 배석한다. 타 부처와 과기 정책을 조율하기 위해서다. 본부장 위상, 역할과 달리 세부 조직은 실이 아닌 국 단위로 구성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안팎에서 '힘이 부친다'는 우려가 따른다. 한 부처 관계자는 “과기혁신본부가 다루는 범부처, 유관기관 종합계획만 200여개에 이른다”면서 “이를 모두 들여다보고 조정하는 역할만 해도 힘에 겨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이 같은 지적에 따라 직제 신설, 최소한의 인력 충원을 골자로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실장급인 조정관 직제를 신설할 계획이다. 올해 새롭게 확보한 예비타당성조사 업무를 추진할 5급(사무관급) 인력 2명 등 총 4명을 증원할 계획이다.

과기계 관계자는 “과기혁신본부 출범 당시부터 1급 조정관 필요성이 대두됐다”면서 “본부장과 국장이 맞닿은 구조는 내외부 소통, 협상의 효율성 측면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