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과골삼천(?骨三穿)

다산 정약용의 진정한 위대성은 유배 기간 18년 동안 이룩한 500권의 저술보다 그가 길러 낸 수많은 제자로 인해 더 빛을 발한다.

그는 유배 도중에 많은 제자를 길러 냈다. 당시 제자들에게 강조한 공부 방법은 '초서(抄書)'다. 책의 중요 대목을 베껴 가며 읽는 방식이다.

다산이 가장 아낀 제자는 황상이다. 추사 김정희까지 시, 학문, 인품에 빠져서 교류한 이다.

황상의 일화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황상은 스승의 가르침대로 나이 70이 넘어서도 여전히 초서를 계속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 나이에 초서는 해서 무엇 하느냐”고 하자 황상은 “우리 스승은 강진에서 20년 유배 생활 동안 복사뼈에 세 번 구멍이 나도록 공부하고 또 공부하셨다. 거기에 비하면 내 공부는 공부도 아니다”고 답했다. '과골삼천(〃骨三穿)'의 고사는 이렇게 생겨났다.

복사뼈에 정말 세 번이나 구멍이 났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가 저술한 500권은 일반인의 노력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업적임에는 분명하다.

그가 저술한 500권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목민심서(牧民心書)'다. 공직에 몸을 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되새겼을 만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가르침 가운데 하나가 '세력자의 횡포를 막아라'이다.

20일 이와 가장 밀접한 정부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그것도 김상조 위원장이 방점을 두고 신설한 '기업집단국'을 대상으로 했다.

의욕 넘치게 재벌 개혁을 추진해 온 공정위 입장에서 '대기업 봐주기' 혐의 등으로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았으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가장 큰 경제 세력인 재벌의 횡포를 막아야 하는 공정위가 그들과 공생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 압수수색은 지난 1년 동안 기업집단국이 해 온 일에 대한 수사라기보다 과거 해당 일을 맡은 부서의 자료가 이관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이전의 일이라고 선을 긋는 것으로 끝낼 수는 없다. 이전의 잘못 또한 공정위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이번 압수수색은 두 가지 사안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는 공정위 간부들이 퇴직 후 취업할 수 없는 업무 관련 이익단체나 기업에 자리를 마련한 정황이다. 또 공정위의 조사 관련 대기업 봐주기 의혹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압수수색을 검찰과 공정위 간 '전속고발권'을 놓고 벌이는 힘겨루기의 연장선에 놓고 본다. 공정위에 대한 검찰의 압박이라는 것이다. 큰일 날 시각이다. 공직자의 위법 행위에 전제가 붙을 수 없다.

목민심서의 기본 가르침 가운데에는 물러날 때 특히 청렴해야 한다거나 대중을 통솔하는 길은 위엄과 신용뿐이라는 내용도 있다. 두 가지 역시 목민심서의 기본 중 기본 가르침이다.

공정위는 압수수색과 관련해 수사에 성실히 임하고, 결과가 나온다면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공정위가 국민 신뢰를 받지 못하는 부분은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고 반성하는 내부 노력을 더 하겠다고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정위가 과거의 잘못을 끊고 새로운 권위를 세워 가길 바란다. 이와 더불어 지난 1년 동안 기울여 온 공정위의 노력까지 평가절하 되지 않았으면 한다.

공정위의 가치는 '공정(公正)'에 있다. 이 기준은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한 번쯤 목민심서를 초서해 보는 건 어떨까.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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