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규모 예타 좌절...반도체 미래 투자 먹구름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각각 추진한 2조원 규모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R&D)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 1차 관문인 기술성 평가를 통과하지 못했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내세워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 가운데 한국에선 차세대 R&D가 좌절되면서 '반도체 초격차' 전략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산업계, 학계, 연구계는 '반도체'라는 동일 키워드로 양쪽 부처가 예타 조사를 신청한 것이 예타 탈락 원인일 것으로 추정했다. 산업부와 과기정통부는 '중복'이 거의 없다고 주장했지만 평가 기관 시각은 다른 셈이었다.

2조 규모 예타 좌절...반도체 미래 투자 먹구름

25일 해당 R&D 기획에 관여한 학계, 연구계, 산업계에 따르면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최근 기술성 평가에서 양 부처 기획안을 떨어뜨렸다. 현재 구두로 통보한 상태다. 조만간 낙방 이유를 공식 전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타 조사는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 재정 300억원 이상이 소요되는 국가 R&D 사업을 진행하기 전에 타당성과 가능성을 미리 평가하는 제도다. 기술성(1차)과 경제성(2차) 평가로 이뤄진다.

산업부와 과기정통부는 지난달 예타 조사를 신청할 때만 하더라도 연내 통과, 내년부터 R&D 사업 시작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해당 기획이 기술성 평가에서 탈락, 기획 전체를 새롭게 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업 기획에 참여한 한 대학 교수는 “한정된 국가 예산 내에서 꼭 필요한 투자를 선별하는 것이 예타 조사인데 양 부처가 동일한 키워드로 기획안을 낸 것이 기술성 평가도 통과하지 못한 이유로 보인다”면서 “어려워도 따로 진행하기보단 함께 진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부와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초부터 차세대 반도체 R&D 기획을 공동 진행해 왔다. 그러다 올해 초 돌연 '개별 진행'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표면 이유는 예산을 빠르게 타내기 위함이었다. 최근 예타 제도 개선에 따라 사업 규모가 1조원 이상이고 기간이 6년 이상이면 예타 신청 이전에 국가R&D사업평가자문위원회 검토를 받도록 돼 있다. 산업부와 과기정통부는 이에 따라 지난해 약 2조5000억원 규모로 기획한 R&D안을 각각 1조원 미만인 9800억원으로 잡고 따로 예타 조사를 신청했다.

그러나 여러 전문가는 양 부처가 조사를 따로 신청하면서 과제 내부에 중복이 있었고, 전체 기획이 정리되지 못한 느낌을 줬다고 비판했다.

디스플레이 산업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관련 예타 조사가 기술성 평가를 통과하고 경제성 평가를 받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10년 동안 반도체에 170조원을 쏟아 붓는데 우리는 부처 간 다른 노선을 고수하면서 예산도 못 타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