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처 선의 경쟁, 시너지로 승화해야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각각 추진한 2조원 규모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R&D)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 기술성 평가조차 통과하지 못해 관련 산업계·연구계가 패닉에 빠졌다. 중국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번 차세대 반도체 R&D 프로젝트는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이미 세계를 선도하는 분야이니 유관 R&D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나온다. 그러나 2018년 현재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어느 때보다 차세대 투자와 R&D가 절실한 상황이다. 메모리와 장비·소재 경쟁력은 높이고 시스템반도체 분야도 새로운 전기를 이룰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은 세계 첨단 산업 발전 방향만 봐도 판단이 가능하다.

수년 후 글로벌에서의 한국 반도체 산업 위상을 지켜보면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은 자명해질 것이다. '실기'로 이어지면 뼈아픈 후회를 남길 가능성이 있지만 이번 차세대 반도체 R&D 사업이 공식 절차에 따른 판단이기 때문에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유관 산업계와 부처 입장이다.

이번 예타가 통과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도 들려온다. 산업계·학계·연구계에서 '반도체'라는 동일 키워드로 두 부처가 예타 조사를 신청한 것이 예타 탈락의 원인일 것이라는 추정이다. 산업부와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초부터 차세대 반도체 R&D 기획을 공동 진행해 오다가 올해 초 '개별 진행'으로 노선을 변경한 바 있다. 차세대 반도체 R&D 사업이 산업부와 과기정통부 모두 탈락하자 각자 추진한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 부처 간엔 늘 경쟁과 시너지가 공존해 왔다. 부처 입장에서는 맡은 일의 추진 동력이 예산이기 때문에 예산 확보에 적극 나서며 업무를 추진해야 한다. 일하는 공무원의 바람직한 자세이자 열정으로 평가 받을 일이다. 더 늦기 전에 부처와 업계·학계가 중지를 모아 기획을 새롭게 짜서 다시 도전하면 된다. 부처 간 선의 경쟁을 시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