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재 딛고 파워테크닉스로 다시뭉친 '실리콘카바이드' 전력반도체 전문가들

파워테크닉스는 지난 5월 29일 SiC 전력반도체 양산을 위한 고온 이온주입장비를 포항 나노팹에 반입했다.
파워테크닉스는 지난 5월 29일 SiC 전력반도체 양산을 위한 고온 이온주입장비를 포항 나노팹에 반입했다.

지난해 7월 반도체 업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유망 전력반도체 회사로 알려졌던 메이플세미컨덕터 경영진이 4000억원대 수출금융 사기 범죄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메이플 경영진은 불량 웨이퍼를 정상으로 속여 수출 가격을 부풀리고 허위 수출채권으로 대출을 받았다. 채권 만기가 도래하면 다시 허위 수출채권을 은행에 매각하는 이른바 '뺑뺑이 무역'을 반복하다 파산 지경에 이르면서 사기 행각이 외부로 알려졌다. 그해 9월 메이플세미컨덕터는 결국 청산됐다.

공중 분해로 명맥이 끊길 뻔한 실리콘카바이드(SiC) 전력반도체 개발이 국내 다시 재개돼 주목된다. 메이플세미컨덕터에서 실리콘카바이드(SiC) 전력반도체를 개발하던 이들이 다시 힘을 합쳐 회사를 설립했다. SiC 전력반도체는 전력 변환 효율이 높아 최근 산업용 신재생에너지 인프라와 전기차 등으로 탑재가 확대되는 품목이다.

주인공은 파워테크닉스. 지난해 11월 설립된 회사는 메이플에서 연구개발(R&D)을 총괄했던 정은식 씨가 지난해 3월 흩어진 이들을 규합, 설립됐다. 총 직원은 20명. 관리직 4명을 제외하면 모두 개발 엔지니어다. 이들은 작년 초부터 투자자를 찾아다녔고 코스닥 상장기업 예스티와 인연을 맺었다. 예스티는 지난해 연매출 1500억원을 달성한 기업이다.

예스티 경영진은 처음 메이플 출신 인력들이 찾아왔을 때 '사기 아닐까'라는 의심을 했다. 그러나 정은식 씨가 “메이플의 잘못은 경영진으로 인한 것이었고, 우리 개발진의 SiC 전력반도체 실력은 국내 최고 수준”이라며 예스티를 설득했다.

장동복 예스티 대표는 '속는 셈 치고' 일부 시제품 생산비용을 댔다. 샘플을 만들어서 가져오되, 메이플 기술을 그대로 가져오면 안 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들은 한국전기연구원이 보유한 SiC 전력반도체 원천기술을 이전받고, 포항공대 나노융합기술원(포항나노팹) 설비를 일부 임대해 650볼트(V) 10암페어(A), 20A 쇼트키배리어다이오드(SBD) 제품을 만들어왔다. 메이플의 기술은 모두 회피했다. 한국전기연구원 측은 수율과 성능 모두 기대 이상이라는 호평을 내놨다. 민간 평가업체인 큐알티의 신뢰성 평가도 통과했다.

이 결과를 받아본 장 대표는 개인 자금을 투입키로 결정했다. 그렇게 파워테크닉스가 설립됐다. 정은식씨는 최고기술책임자(CTO) 부사장직을 맡았다. 장 대표는 57.14%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다. 나머지 30% 이상은 직원들이, 5%가량을 파워테크닉스 김도하 대표가 가졌다. 김 대표는 15년간 예스티에 근무한 재무통으로 지난해까지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일했다.

김 대표는 “현재 파워테크닉스 자체로 7건의 자체 특허를 출원했고, 연내 총 20건 특허를 출원할 것”이라면서 “한국전기연구원의 원천기술과 우리 인력의 개발, 양산 기술 및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 생산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워테크닉스는 최근 40억원에 이르는 이온주입장비를 구매해 포항 나노팹에 반입했다. 전력반도체 상용화 국책과제를 기획한 이력이 있는 구용서 단국대 교수는 “이 장비를 구매했다는 건 양산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파워테크닉스는 80억원을 더 투자해 SiC 전력반도체 일괄 생산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예스티도 조만간 50억원 자금을 파워테크닉스에 투자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은식 파워테크닉스 부사장은 “SBD는 모스펫 제품과 비교하면 기술 수준이 낮은 이른바 '로테크' 제품이지만 현재 중국 등에서는 공급이 달려 매출 기반이 될 수 있다. 7월부터 양산을 시작한다”면서 “프리미엄 제품인 SiC 기반 모스펫은 현재 개발 중으로 빠르게 양산 체제를 구축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동복 대표는 “SiC 전력반도체는 전력 변환 효율이 높아 최근 산업용 신재생에너지 인프라와 전기차 등으로 탑재가 확대되고 있다”면서 “이 시장은 독일 인피니언과 유럽 ST마이크로, 미국 크리, 일본 로옴 등이 장악하고 있는데, 파워테크닉스가 성장하면 상당한 수입대체 효과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파워테크닉스는 오는 7월 19일 양산 기념식을 열 예정이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