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교수포럼의 정책 시시비비]<6>기업부설연구소 4만개 시대의 과제

글자 작게 글자 크게 인쇄하기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1981년 기업 연구개발 활동을 활성화한다는 목적으로 신고제도가 만들어진 지 37년 만인 올해 3월 기업부설연구소가 4만개를 넘어섰다. 2004년에 1만개를 돌파했고, 2만개는 2010년, 3만개를 2014년에 넘어선 이후 3년 만에 새 이정표를 세운 셈이다.

그새 우리 기업 기술혁신 기반이 한층 확충됐고 R&D 중요성에 대한 산업 저변 인식도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크게 반길 일이다. 결과적으로 산업계가 국가 전체 R&D 투자와 연구인력 77.7%와 69.7%를 차지한다니 이제 기업이 국가 R&D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는 산업기술진흥협회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나 이런 소식을 접하면서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은 시장에서 체감하는 기업 실상이 이런 수치와는 사뭇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기업은 제조경쟁력을 유지하는 게 우선이고, 미래 기술에 꾸준히 투자하기는 쉽지 않은 사정이라고 한다.

정부도 이런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기업연구소 4만개 돌파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대신 향후 어떻게 내실화하고, 질적 성장을 유도할지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이왕 혁신성장 한 축으로 육성하겠다고 한다면 이번 기회에 몇 가지 근본 문제부터 짚어보면 한다.

첫째는 기업 시각에서 우리 혁신생태계 한계를 한번 따져봐야 하겠다. 국가혁신시스템 측면에서 보면 우리처럼 산학연 역량이 골고루 탄탄한 나라도 흔치는 않다. 그러나 정작 산업계는 우리 대학과 공공연구 부문이 자기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기업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여긴다. 실상 사석에서 듣는 기업 인식과 평가는 민망할 정도다.

물론 산학연 공히 각자 기능과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으로 족하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연구소 4만개 시대에 여전히 위기를 말해야 하는 산업계 상황을 감안해 볼 때 우리 혁신시스템에 진정 문제는 없는지 따져봄이 우선이다.

둘째, 산학연 간 칸막이는 낮추고 유동성은 높일 필요가 있다. 실상 이미 2003년 한 연구는 연구인력이 산업계에서 출연연으로, 출연연에서 다시 대학으로 쏠리고 있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만일 이 현상이 지금도 여전하다면 산업계는 적어도 지난 15년간 우수 연구인력 유출을 겪어온 셈이 된다.

물론 이런 현상 저간에 우리 사회 가치체계가 자리 잡고 있는 만큼 기업만의 책임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정부가 나선다고 해결책이 선뜻 나오지는 않겠지만 공론화가 필요한 만큼 정부도 자신의 역할을 놓아서는 안 되겠다.

셋째는 기업 연구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안도 찾아야 하겠다. 대기업조차 외부 혁신생태계 도움 없이 연구생산성을 높이기는 쉽지 않다. 이런 탓에 산학연간 개방형 생태계 구축이나 기술협력이 강조되지만 정작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업 요구를 이해하고 기업 R&D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는 기업연구소 발 R&D 전문기업이 대안이 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행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연구산업 육성을 추진해 왔다고 하니 이미 4만개가 넘어선 연구소 발 창업을 연계·유도한다면 두 정책이 윈윈할 수 있는 고리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기업연구소 4만개 시대에 산업 연구경쟁력을 정부가 나서 고민한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겠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생태계 전체 문제라는 점에서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다.

기업의 자발적 노력과 R&D 투자를 전제로 우리 혁신시스템 문제를 기업과 산업계 시선으로 한번 따져볼 때가 됐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따가운 질책이 되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풀어야 할 오래 묵혀둔 숙제가 아닌가.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동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