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리니언시 문제로 검찰-공정위 갈등…전문가들 “이원화는 맞지 않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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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가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 개선 방안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검찰은 공정위가 갖고 있는 리니언시 권한을 나눠갖는 '형사 리니언시' 도입 필요성을 주장했다. 공정위는 형사 리니언시가 자진 신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검찰과 리니언시 자료 공유는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리니언시 개선은 공정위가 추진 중인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의 핵심 사안 중 하나다. 검찰과 공정위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공정거래법 개정 최종 권한을 가진 국회도 제대로 결론을 내기 어렵다. 전문가 입장도 엇갈린다. 그러나 “어느 기관이 권한을 갖든 '이원화'보다는 '일원화'가 낫다”는 의견은 대체로 공통됐다.

◇담합, 리니언시 없인 적발 어려워

리니언시는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한 기업에 고발·과징금을 면제해 주는 제도다. 1순위로 자진신고한 기업은 과징금 전액, 2순위 자진신고 기업은 50%를 면제받는다. 이 때문에 종종 '면죄부'라는 지적을 받는다. 그럼에도 리니언시 폐지 목소리가 높지 않은 이유는 현실적으로 리니언시 없이는 담합 적발이 어렵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개인이나 소상공인 간 짬짜미도 증거가 잘 남지 않는데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기업 간 담합은 더욱 증거 확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직권조사로 발견하기 어려운 증거를 확보하고, 담합 기업간 불신을 조장하기 위해 리니언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리니언시 활용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처음 리니언시를 도입했는데, 2005년 제도 개선 이후 활용이 크게 확대됐다. '2017년 공정거래백서'에 따르면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담합 사건 중 리니언시가 활용된 비율은 최근 5년(2012~2016년) 동안 매년 50.0~82.1% 수준을 기록했다.

공정위는 “자진신고가 급증하기 시작한 2005~2016년 기간 과징금이 부과된 담합 사건은 총 411건”이라며 “이 가운데 리니언시 활용으로 적발한 사건은 256건, 62.2%에 달한다”고 밝혔다.

◇리니언시 정비 논의, 왜 시작됐나

최근 리니언시 개선 논의가 시작된 것은 '성과 부족'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공정위 담합 사건 처리는 세계적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리니언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경쟁법 전문 저널 글로벌컴피티션리뷰(GCR)는 2016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공정위를 '최우수 등급' 경쟁당국으로 평가하며 “적극적으로 담합을 적발·제재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니언시 개선 논의는 전속고발제 개편에서 촉발됐다.

전속고발제는 공정거래법 등 6개 법률 위반 행위에 대해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 기소가 가능하도록 한 제도다. 전속고발권을 가진 공정위가 그간 고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꾸준히 문제로 지적됐고, 문재인 대통령은 '전속고발제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공정위는 전속고발제 △전면폐지 △선별폐지 △수정·보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을 위한 개정안에 담을 계획이다. 공정위와 검찰은 경성담합(경쟁제한 효과 발생이 명백한 가격·입찰 담합 등. 공동 연구개발과 같은 연성담합과 대비되는 개념)에 대한 전속고발제 폐지에 대해 공감대를 이뤘다.

그러나 전속고발제가 폐지되면 리니언시가 무력화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리니언시를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전속고발제가 폐지돼 누구나 담합 사건을 고발할 수 있게 되면 자진신고를 통한 고발 면제가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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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권한 공유하자”…공정위 “자료 공유는 가능”

검찰과 공정위는 경성담합에 대한 전속고발제 폐지까지 공감대를 이뤘지만, 리니언시 개선 방안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렸다.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논의를 본격화 하기 이전부터 김상조 공정위원장과 문무일 검찰총장이 직접 만나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논의는 평행선을 달렸다.

검찰은 공정위가 갖고 있는 리니언시 권한을 공유하자는 입장이다. 이른바 형사 리니언시 도입이다. 이 경우 담합을 자진신고하려는 기업은 검찰과 공정위에 각각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 과징금을 면제 받기 위해 공정위에, 고발을 면제 받기 위해 검찰에 각각 자진신고 해야 하는 것이다.

구상엽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는 최근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토론회에 참석해 “전속고발제가 폐지된다는 것은 형사 리니언시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라며 “리니언시의 생명은 예측가능성이며, 이를 담보할 가장 큰 툴은 법으로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 부장검사는 “리니언시가 독점되는 순간 담합 집행이 독점된다”며 “검찰이든 공정위든 리니언시를 독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양 기관의 협력·협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형사 리니언시 도입은 자진신고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위법성을 스스로 인정한 기업이 공정위 뿐 아니라 검찰에도 자진신고하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라는 판단이다. 또한 공정위와 검찰 간 각기 다른 판단을 내렸을 경우 자진신고만 하고 고발 면제 등 혜택은 못 받을 수 있다는 위험부담도 있다. 다만 공정위는 검찰과 협업 강화 차원에서 기업이 제출한 리니언시 자료를 공유할 수는 있다는 입장이다.

김재신 공정위 경쟁정책국장은 토론회에서 “리니언시는 매우 민감한 제도라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정부는 리니언시의 인센티브가 매력적으로 유지되도록 만들어 기업이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며 “급격한 변화는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신중하게 가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이원화는 맞지 않아”

전문가들 입장도 엇갈린다. 검찰과 공정위가 각기 나름의 논리를 갖고 있어 어느 방향이 명백히 맞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다만 리니언시 권한을 검찰과 공정위가 나눠 갖는 것은 자진신고를 위축시킬 수 있어 '일원화'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됐다.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 위원 사이에서도 양쪽 의견이 함께 나왔다.

특위는 “공정위, 검찰이 각각 리니언시 제도 운영시 양 기관간 판단 차이로 리니언시 사업자 지위가 불안해질 우려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밝혔다. 반대로 “이에 대해 실제 운영시 양 기관간 판단 차이 발생 가능성은 낮으며, 형사 절차 이후 행정절차 단계에서 자진신고자가 조사 협조 등을 번복할 가능성이 적다는 의견도 제시됐다”고 설명했다.

공정거래법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검찰과 공정위 어느 쪽 의견이 무조건 맞다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다만 검찰 측이 미국 사례를 근거로 형사 리니언시 도입을 주장한다면 이는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경쟁법은 연방거래위원회(FTC), 법무부(DOJ)가 함께 운용하는데 담합 사건은 우리나라 공정위에 해당하는 FTC가 아닌 DOJ가 맡는다. DOJ는 우리나라 검찰처럼 기소 권한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DOJ가 이미 담합 사건을 맡고 있던 상황에서 FTC가 새롭게 태어난 것이라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평가다.

한 법무법인의 변호사는 “리니언시 권한을 어느 기관이 갖든 이원화 하는 것에는 반대”라며 “검찰과 공정위간 판단에 혼선이 생길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선 당연히 부담이 커져 리니언시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