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국 가전산업이 한계산업에 던지는 메시지

국내 가전 산업은 10년째 포화 시장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다. 이미 웬만한 가정에는 필수 가전이 다 보급됐고 교체 주기도 길기 때문이다. 고장이 나도록 만드는 것이 가전 산업의 살길이라는 농담도 심심찮게 듣는다.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국내 가전유통 시장 통계를 보면 지난 2015년부터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유지한다. 환경가전처럼 미세먼지와 황사 등 사회이슈가 생겨나 판매가 늘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가전업계 스스로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해 신규 시장을 개척한 노력의 결과다.

의류 스타일러와 건조기, 뷰티가전 등이 대표적이다. 기존 전통 가전의 끊임없는 대형·박형화와 프리미엄화 도전도 한몫했다. 백색가전의 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 접목도 매출 증가에 기여했다. 가전산업은 생활수준과 밀접하다. 생활수준이 높은 소비자일수록 차별화된 서비스 가전을 원한다. 가전은 편리함의 정도가 차별화 포인트다. 가전산업 탄생 배경이기도 하다.

2000년대 이전 세계 가전 시장은 일본이 주도했다. 디지털카메라, 캠코더, 전기밥솥, 전기주전자, 협압계 등 열거할 수 없이 많은 새로운 수요를 만들면서 시장을 키우고 지켰다. 지금은 한국 가전업계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중국의 빠른 추격이 있지만 아직은 한국이 단연 세계 가전 트렌드 창출국이다. 우리에게 더 이상 가전 분야에 관한 한 벤치마킹 대상은 없다. LG전자와 삼성전자 뿐 아니라 많은 중견기업이 어려움 속에서도 미래의 수요를 창출하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 까다로운 한국 시장에서 성공한 아이템은 해외에서도 대박이 터진다.

우리 경제는 선진국을 빠르게 쫒아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몇몇 산업 분야에서 경쟁국보다 잘 만들고 원가도 줄이고 품질도 높여 정상에 올라섰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미국 통상 압력에 꼼짝달싹 못하는 상황도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창출한 아이템과 시장은 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미래 수요를 만드는 새로운 도전이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