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26>혁신가치사슬

2000년 6월 프록터앤드갬블(P&G) 최고경영자(CEO)가 된 앨런 래플리에게 오래된 걱정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보다 신제품 개발로 유명한 기업이었지만 어느 순간 혁신은 정체돼 있었다.

래플리는 스티브 베넷이 CEO로 있던 인튜이트를 눈여겨봤다. 베넷은 인튜이트가 고객으로부터 모은 수많은 아이디어가 있으면서도 여기에 파묻혀 우왕좌왕하는 게 단 하나의 문제라고 집어냈다. 가치 있는 아이디어를 골라내 개발 부서에 넘기고 실행력을 높이는 것으로 3년 만에 매출과 수익을 50%나 늘렸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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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플리는 베넷을 따라하는 대신 자신만의 진단을 해봤다. 결론은 정반대였다. P&G에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10개 사업부의 아이디어를 엮어 30개 팀을 만들었다. '애스크 미'라는 내부통신망도 열었다. 누구든 문제를 올릴 수 있었고, 직원 1만명 가운데 누군가에게 있는 아이디어를 찾았다. 유명한 '올레이 데일리 페이셜스' 브랜드도 이 혁신의 결과다.

'작업 혁신'의 저자이자 유명한 자기계발 강사인 모르텐 한센에게 혁신이 노력에 비해 성과가 없다는 고객들의 푸념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골칫거리였다. 도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30개 글로벌 기업에서 120개의 제품 개발 프로젝트를 골라 분석해 보았다. 결과는 의외였다. 많은 기업이 다른 기업의 그럴듯한 혁신 방식이나 유행을 베끼고 있었다. 마치 콜레스테롤 찌꺼기 탓에 혈류가 멈춘 것처럼 한쪽은 잘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쪽에서 막혀 있었다.

세계 최대의 출판사이자 유서 깊은 랜덤하우스의 소유주이기도 한 카를 베르텔스만이 아마존의 온라인 북스토어 모방에 3년이나 걸린 데는 모든 역량에도 분산된 사업부가 만든 병목 그 한 가지 탓이었다. 1980년대에 워크맨을 만들어 낸 소니가 아이팟과 MP3 플레이어에서 뒤처진 것은 그 사이 높아진 콧대가 만든 '우리가 개발한 게 아니야'(NIH) 신드롬 탓이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대부분 기업 혁신은 생성, 발현, 확산이라는 단계를 거친다. 기업의 경쟁력도 대개 사업부 역량, 내부 협력, 외부 네트워크, 조직 혁신성, 수행 능력, 지식 확산 등 여섯 가지로 구성된다. 이것들은 링크라 불리는 고리로 연결돼 있다. 문제는 이 혁신의 가치사슬 가운데 어디에 문제가 생겨도 성과는 떨어지기 마련이란 점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5㎞쯤 아래에 월풀이라는 명소가 있다. 이곳에서 나이아가라 강은 90도로 꺾인다. 상류에서 들어오는 물은 거세고 꺾인 출구마저 좁다 보니 들어온 물은 웅덩이 안을 몇 차례고 큰 소용돌이를 이루며 맴돈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투입이 많아도 어딘가 막혀 있으면 성과는 적다. 한센과 경영 혁신가인 줄리언 버킨쇼 영국 런던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말이 맞다면 정작 기업에 필요한 것은 상식과 반대되는 것이다. 가장 잘하는 부분에 집착하는 대신 병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제 한번 따라해 보자. 우선 내 혁신가치사슬 속 병목을 찾아보자. 그리고 래플리와 베넷이 정반대의 해법을 찾아냈듯 나만의 해결책을 상상해 보자.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