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떠오르는 융합기술 선점, 산·학·연 함께해야 가능하다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은 꾸준히 1위 자리를 지켜 온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막대한 정부 자본과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에 넘겨줬다. 물론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시장은 아직 견고한 아성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높은 기술력과 격차를 유지할 수 있을지 많은 사람이 의문을 품고 있다.

한양대 박진성 교수
한양대 박진성 교수

미국 진공학회가 주관하는 제18회 국제 원자층증착(ALD)학회가 7월 29일~8월 1일 나흘 일정으로 인천 송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4년 주기로 미국, 아시아, 유럽을 순회하면서 단일 기술 주제 하나를 다루면서 세계 산·학·연 관계자가 1000여명 참석한다.

ALD 나노 공정 원천 기술은 핀란드에서 1970년대에 무기 발광 디스플레이(EL, LED 등)에 응용하기 위해 개발됐지만 LCD 등 경쟁 기술에 의해 시장에서 밀려났다. 1990년대 한국 반도체 제조에 처음으로 양산화가 접목되면서 세계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는 필수 불가결한 핵심 박막 공정 기술로 자리 잡았다.

흥미롭게도 이 ALD 기술을 다시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응용하려는 움직임이 국내외에서 확대되고 있다. OLED 봉지 기술부터 플렉시블 응용 소재·장비, 신규 반도체 소재·소자 원천 기술 등의 연구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중국 ALD 연구 그룹은 전체 발표에서 1% 미만으로 미미했지만 올해 전체 연구 발표의 1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안타깝게도 전자소재 응용 분야에서 중국 ALD 연구 그룹들의 빠른 추격과 성장은 인력과 물자 모두 두드러지게 가시화됐다.

최근 중국 성장에 대비해 국내에서 제안되는 '기술의 블랙박스화'는 미래 개발 기술에 적용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여겨진다. 오히려 역공학으로도 흉내 낼 수 없는 고도 기술 내재 제품이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ALD와 같은 융합나노 기술은 이러한 역공학에 대응할 수 있는 예다. 다양한 분야의 융합 기술이어서 ALD 장비, 전구체, 합성 분야 기업을 비롯해 우수한 공정 노하우와 숙련된 연구진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파악하기가 어렵다.

한국 반도체 성장 이면은 지난 25년여 동안 정부, 기업, 대학의 과감한 투자와 지원으로 성장한 ALD 융합제조 기술이 근간에 있었다. 중국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서 성공시키려는 '중국 제조 2025'의 중점 육성 산업 10개 가운데 '집적회로 산업'과 'IT전자 산업'은 상기 핵심 제조 기술이 필수다.

지난 2012년부터 6년 동안 진행된 중국 ALD학회는 상하이의 반도체 그룹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최근에는 중국 정부의 높은 국가연구비 투자와 중국 업체의 과감한 합병 투자까지 국내 ALD 산업에 깊숙하게 침투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국내 중견 장비·소재 기업이 디스플레이 응용 산업을 위해 연구개발 비중을 높이고 있고, 중국 기술 발전을 경계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다시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 격차와 도약을 위한 정부-기업-대학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떠오른다. 디스플레이 재도약을 위한 거대한 변화 바람이 국내 산·학·연에 불어오고 있다. 도전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불확실한 미래의 산업 기술 전쟁에서 우리 협력과 도전이 결실을 맺는다면 다시 한 번 디스플레이 강국 대한민국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진성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jsparklime@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