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기업 목소리 직접 듣겠다" vs 재계 "무언의 압박에 부담가중"

문재인 정부 2기를 맞아 청와대 비서진에게 기업 현장을 챙기라는 특명이 주어졌다. 각종 규제는 물론이고 최저임금인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현장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지지부진한 경제정책 성과를 높이고, 민간 주도 혁신성장을 독려하는 차원이다.

이 같은 행보가 현장 의견의 정책 연계보다는 '생색내기'에 그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자리 창출의 근원지인 재계 부담만 가중시킨다는 우려도 있다.

30일 청와대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교체한 경제·일자리수석을 중심으로 기업 현장 방문을 강화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직접 주문한 것으로 현장에서 경제 부진 돌파구를 마련하자는 취지로 풀이된다.

靑 "기업 목소리 직접 듣겠다" vs 재계 "무언의 압박에 부담가중"

윤종원 경제수석은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해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기업인 대표 협의회를 방문했다. 정태호 일자리수석은 신규 고용창출에 모범적인 '일자리 으뜸기업' 중심으로 현장을 찾았다. 일자리 창출 핵심인 대기업과의 일대일 면담도 여름 휴가철 직후 갖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비서진에 기업인과의 소통을 확대하라고 주문했다”며 “경제 지표가 나아지지 않는데다 정책에 대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대한 세부점검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청와대 정책실은 기업과의 소통을 전담 부처에 일임했다. 전 정권에서 경제·정책수석과 기업간 소통이 결과적으로 정경유착 전형으로 비춰지면서 의도적으로 선을 그어왔다. 대통령과 재계 총수와의 공식 만찬 자리만 있었다.

1년이 지나도록 핵심 과제인 일자리창출이 제자리걸음인데다 각종 정책으로 기업 어려움이 가중됐다. 청와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실무 소통을 강화하는 방침으로 전환했다. 규제와 애로사항을 구체적으로 듣고 정책 개선에 나서겠다는 의지다.

청와대는 기업인을 적극 만나긴 하되 '듣기만 하라'는 것이 세부 지침이다. 어디에, 어떤 투자를 해 달라는 구체적인 요구는 하지 않는다.

재계는 청와대 소통 방침을 반기면서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표면화하진 않지만 정부가 어려움을 해소할테니 일자리 창출과 신규 투자에 나서달라는 숨은 '딜'이 포함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요구 없는 면담'에 대한 압박감이 크다는 입장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청와대서 '앞으로 가만히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라 더 난감하다”며 “고용 창출 등 무엇을 바라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상황에서 순수하게 애로사항만 듣는 자리가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대규모 투자 계획 발표가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계 부담은 가중됐다. 삼성이 '통큰 투자'를 하면 청와대나 정부가 삼성 사례를 재계에 순차적으로 들이밀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삼성과 차별화된 것을 발표하지 않고선 애써 발표한 '선물보따리'가 묻힐 수 밖에 없다는 게 재계 고민이다.

정부의 기업 소통창구 단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재계는 지난 1년 간 청와대와는 소통이 부진했지만 부처 면담은 활발히 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말 LG를 시작으로 현대차, SK, 신세계 등을 연이어 방문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까지 대기업을 찾아 애로 사항을 청취했다.

재계 관계자는 “청와대와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동일한 정부 차원에서 놓고보면 소통 창구가 너무 많다”며 “기업의 애로사항은 사실상 한두개로 모아지는데, 장관 만날때마다 애로사항을 새롭게 만들 수도 없고 난처하다”고 털어놨다.

업계 관계자는 “청와대 현장행보에는 단순 정책 홍보 뿐 아니라 다양한 의미가 포함될 수 밖에 없다”며 “현장의 우려와 애로를 충분히 듣고 실질적으로 정책에 제대로 반영해 주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실효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