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피일 미뤄지는 '레그테크' 도입...금감원-업계 '동상이몽'에 시장 혼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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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분야 레그테크(RegTech) 도입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준법감시 비용 절감을 위한 금융 규제 분야 신기술 적용은 금융당국 내부통제 강화 방침에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명확한 지침 없이 신기술 도입을 지원하겠다는 변죽만 울리면서 금융권 혼란만 양상되는 모양새다.

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개발원은 6월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상품·위험률 확인 시스템 구축'을 위한 업체 선정을 마치고 시스템 구축에 들어갔다. 보험상품 약관 심사 신청 이전 AI를 통해 상품·위험률 확인 업무를 사전에 마무리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보험개발원은 시스템 개발을 통해 업무 효율 향상은 물론 상품·위험률 확인의 정확성 향상, 수익성 분석, 상품 개발 사전 컨설팅 등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력 의존적인 기존 준법감시 업무에서 벗어나 금융상품 출시에 따른 위험 측정과 법규 준수 점검 등을 자동화하는 레그테크 도입이 현실화하는 셈이다.

레그테크는 규제(Regulation)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등 신기술을 활용해 준법감시 행위를 효율적으로 준수하기 위한 일련의 기술을 의미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부터 “준법감시 업무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레그테크 도입을 적극 검토해달라”며 레그테크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금감원이 도입 계획을 밝힌 지 6개월여가 지난 현재도 시장에서는 레그테크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시스템 구축을 개시한 보험개발원조차 “해당 시스템이 규제에 맞게 사전 검증절차를 거친다는 측면에서는 레그테크라고 볼 수 있다”면서도 “레그테크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고 모호한 점이 있어 자체적으로는 인슈어테크란 표현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도 레그테크 도입을 위한 논의를 개시했지만 감독당국의 불명확한 방침에 우려하고 있다. 우선 새로운 서비스가 금융 당국의 기존 규제를 만족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각종 금융사고로 인한 책임소재 여부 등이 해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레그테크 도입을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우선 규제 관련 데이터가 머신러닝 등 기계가 인식할 수 있는 형태(Machine-Readable)로 제공되는 법률적 가이드라인을 수립해야 한다”며 “금융당국의 동향을 살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창훈 컴플라이언스이니셔티브 대표는 “레그테크를 두고 금감원은 규제 효율성을 강조하는 반면 업계는 규제 비용 감소로 접근하는 동상이몽이 계속된다”며 “당국과 업계뿐만 아니라 IT 솔루션 업체와의 관계 등을 고려해 논의를 조속히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 수장이 올해 초 연이어 교체되면서 레그테크를 비롯한 금융혁신 분야 논의가 뒷전으로 밀린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흥식 전 금감원장 당시만 해도 금융감독 분야에도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윤석헌 원장 취임 이후에는 내부통제 강화만을 강조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 감리, 삼성증권 내부통제 등으로 금융혁신 관련 이슈는 다소 밀린 것이 사실”이라는 반응이다.

실제 금감원은 지난 6월에야 유광열 수석부원장을 의장으로 한 핀테크 전략협의회를 출범하며 레그테크를 비롯한 핀테크 관련 현안 대응에 나섰다. 하반기 중으로 레그테크 관련 시범사업을 개시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명확한 방향성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권의 의견을 수렴해 하반기 중 시범사업을 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윤호기자 yuno@etnews.com,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