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5G는 없다···5G 확산 가로막는 망 중립성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에 망 중립성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3G 시절 제정된 망 중립성 원칙에 네트워크 슬라이싱 등 5G 특성을 추가·반영하지 않는다면, 5G 상용화 이후 제대로 된 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5G 속성을 망 중립성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에, 일각에선 '망 중립성 흔들기'로 규정하고 반대하고 있다.

자칫 망 중립성이 5G 서비스 확산을 가로막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정부는 이렇다 할 조치 없이 안일하게 바라보고 있다.

◇논란 핵심 '관리형 서비스'

망 중립성 논란 핵심은 관리형 서비스다. 관리형 서비스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5G 서비스 출시 여부가 좌우된다.

5G는 초고속·초연결·초저지연 3대 특성을 만족해야 하는 만큼 필연적으로 '전송품질(QoS)'을 보장해야 한다.

극히 짧은 순간이라도 지연이 발생하거나 대규모 기기 연결을 감당하지 못하면 서비스 실패로 이어지고 이는 생명을 잃거나 막대한 경제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

이처럼 전송품질을 보장하는 서비스를 현재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에서 '관리형 서비스(managed service)'라 지칭한다.

반면에 품질을 보장하지 않지만 모두가 공평하게 이용하는 일반 인터넷을 '최선형 서비스(Best effort service)'라 한다. 최선은 다하지만, 보장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현재 관리형 서비스는 IPTV와 LTE음성통화(VoLTE) 뿐이다. IPTV는 일반 인터넷과 물리적으로 구분된 별도 회선을 사용하고 VoLTE는 모든 사용자에게 공평하게 제공된다.

이에 따라 차별이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5G에선 '네트워크 슬라이싱'을 통해 하나의 네트워크에서 물리적이 아닌 논리적 구분이 불가피하다.

만약 네트워크 슬라이싱에 관계없이 5G 네트워크를 단일 최선형 서비스로 간주하면 관리형 서비스는 설 자리가 없다.

반면에 긴급성을 이유로 A 슬라이스를 관리형 서비스로 인정하면, 비슷한 긴급성을 가진 B, C, D 슬라이스도 관리형 서비스 인정을 요구할 것이다.

현재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5G 서비스 '걸림돌'

관리형 서비스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유일한 해결책은 최선형 인터넷에서 '우선전송(패스트 레인)'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트래픽 차별을 금지하는 망 중립성 원칙을 정면 위반하는 것이다. 관리형 서비스 문제는 5G 상용화에 생각보다 강력한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자율주행차와 원격의료 등은 전송품질 보장이 필수다. 대규모 화재가 발생해 5G 드론이 출동할 경우, 수많은 시민이 몰리면 트래픽 정체가 일어날 수 있다. 드론 트래픽을 우선 전송해야 한다. 사물인터넷(IoT)을 이용해 공장 효율성을 높이는 '스마트 팩토리' 역시 전송품질 보장이 필수다.

정부와 시민단체는 '5G 서비스 이후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이다. 구체적 5G 서비스를 단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규제가 바람직하냐고 되묻고 있다.

기존 제도로 4차 산업혁명 서비스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5G 서비스로 예상되는 상당수는 현재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출시가 불가능하다.

더욱이 네트워크 슬라이싱과 5G 3대 특성은 5G 국제표준에 따른 것으로 어떤 서비스가 등장할 지 예상 가능하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위해 필수설비 제도 개선, 주파수 경매 등을 일사천리로 진행한 정부가 유독 망 중립성 제도 개선에는 손을 놓은 것이다.

◇망 중립성 고칠 곳 '수두룩'

본래 망중립성 원칙은 최선형 서비스에만 적용하는 것이다. 관리형 서비스와는 무관하다. 따라서 최선형 서비스와 관리형 서비스를 구분하고 원칙을 흔들지 않는다면 망중립성 논란이 일어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5G 상용화를 앞두고 망 중립성 논란이 이는 것은 네트워크 슬라이싱 개념 탓이 크다.

2011년 제정한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을 근간으로 하는 국내 망 중립성 규제 체계에는 5G 개념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5G 관점에서 가이드라인은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우선 최선형 인터넷 개념부터 모호하다.

5G에서는 최대 전송속도 1~20Gbps, 전송지연 1~10밀리세컨드(ms), ㎢당 최대 연결 기기 수 10만~100만개 등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이론적으로 수없이 많은 슬라이스가 가능하다.

어떤 슬라이스가 최선형 인터넷인지 기준이 없다.

관리형 서비스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한다. 수많은 슬라이스 중 어떤 게 관리형 서비스인지 충분히 정의되지 않았다.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 합리적 트래픽 관리 기준, 부당한 행위 세부 기준 등 구 방송통신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위원회가 만든 3대 망 중립성 원칙에서 명쾌한 정의를 찾을 수 없다.

가이드라인에서는 '최선형 인터넷 품질이 적정 수준 이하로 저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관리형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다.

최선형 인터넷 자체가 정의되지 않기 때문에 '적정 수준 이하의 품질'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망 중립성 근본 철학도 도전을 받는다.

망중립성은 '단대단(end-to-end)'을 원칙으로 삼는다. 즉 네트워크는 지능을 가져서는 안 되며 정보 처리를 위한 모든 지능은 네트워크 끝단에 위치한 '기기'가 가져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5G 네트워크는 1세대부터 진화해온 통신 네트워크 기술의 정점이자 지능 그 자체다. '모바일 엣지 컴퓨팅(MEC)'이 대표 사례다.

인체에서 뇌의 판단을 기다려서는 몸이 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을 때는 말단에서 '무조건 반사'가 일어나는 것처럼, 5G는 초저지연을 달성하기 위해 기지국과 인접한 서버가 중앙 서버를 거치지 않고 즉각 판단해 트래픽을 처리한다.

이런 네트워크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망 중립성을 강요하면 혁신이 콘텐츠와 단말에서만 일어나고 네트워크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혁신의 독점'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망 관리 투명성 강화와 사후규제를 통해 망 중립성 근간을 보존하면서도 5G 신기술을 반영하는 조치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5G 세계 최초 상용화는 4차 산업혁명과는 거리가 먼 '토목공사'에 그칠 것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