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저마다 혁신성장 외치지만, 부처간 칸막이에 '입법공백'

[이슈분석]저마다 혁신성장 외치지만, 부처간 칸막이에 '입법공백'

소액해외송금 핀테크 기업 벤처투자 '입법 공백'를 초래한 주된 원인으로 벤처투자 시장을 둘러싼 관련 부처 간 칸막이가 지목된다.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중소벤처기업부 등 각 부처는 저마다 혁신성장을 내걸고 추진한 입법 과제가 도리어 혁신 기업의 해외 진출과 추가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로 작용했다. 중기부도 뒤늦게 상황을 인지하고 제도 개선에 착수했지만, 이미 예고된 타부처의 법률 개정 사안에도 제 때 대응하지 못해 정작 시급히 자금 조달이 필요한 기업은 추가 성장 동력 마련에 제동이 걸렸다.

금융권 및 벤처투자업계 안팎에서는 입법 공백을 방지하기 위한 혁신성장 관련 콘트롤타워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어지는 법개정에 구멍난 혁신성장

중기부는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벤특법) 및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이하 창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제출해 소액해외송금 핀테크 업체에도 벤처투자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중기부 관계자는 “소액해외송금 핀테크 업체가 벤처 인증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투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문제가 된 금융실명법 관련 조항을 인용, 단서조항에 넣어 벤특법과 창지법 시행령을 개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중기부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제도 개선에 나섰지만,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기까지는 수개월이 추가로 소요될 전망이다. 입법예고 절차 등 시행령 개정에 따르는 수개월 간 소액해외송금 핀테크 기업은 벤처캐피털(VC) 등을 통한 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졌다.

소액해외송금 핀테크 기업에 대한 투자금지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한 입법이 오히려 기업의 발목을 잡았다. 실제 앞서 중기부는 출범 1호 제정법으로 사행성 업종과 미풍양속을 해치는 일부 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에는 VC가 투자할 수 있도록 한 '벤처투자촉진법'을 도입했다. 정부 입법의 특성 상 입법 예고 과정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현행 벤특법과 창지법을 개정해 즉시 투자가 가능하도록 했다.

중기부의 이런 움직임에 신기술투자조합에 대한 투자 제한도 완화됐다. 금융위는 14일 여신금융전문업법 시행령을 개정해 중기부와 마찬가지로 IT기술을 활용한 금융·보험업 및 부동산업 등에는 투자가 가능하도록 했다.

소액외환송금업무를 규정한 외국환거래법도 마찬가지 목적으로 도입됐다. 당초 기재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별도의 등록 요건을 마련한 이유도 그간 은행과의 컨소시엄을 통해서만 가능했던 핀테크 기업의 업무를 수월하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다만 소비자보호를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자기자본과 IT인프라 설비 등을 갖춰 여타 금융기관에 준하는 관리를 받도록 했다.

정부 관계자는 “제도 개선 과정에서 부처 수장이 논의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세세한 사항을 미처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크게 문제가 불거진 경우가 아니라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시급한 혁신성장 콘트롤타워 도입

이번 사례도 각 부처가 저마다 혁신성장을 위한 입법 과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특히 금융실명법, 여신금융법 등을 소관하는 금융위와 벤처투자 관련 법령을 소관하는 중기부의 법률 체계 차이로 인한 혼선이 발생했다.

창업투자회사의 투자 기준을 규정한 창지법 시행령에는 금융실명법이 정의한 금융기관에 대한 투자가 행위제한 요건으로 포함되어 있다. 반면 창투사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신기술투자회사에 대한 행위제한 요건에는 해당 내용이 담겨있지 않다.

창투사와는 달리 금융위의 여신전문업법 시행령 개정으로 신기술투자조합은 소액외환송금 핀테크에 대한 투자가 가능해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신기술투자조합의 투자 대상을 내거티브 방식으로 개선한 이번 개정안에 따라 핀테크 기업이라면 투자가 가능하다”며 “타부처에서 문제가 발생했으니 들여다 보겠지만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중기부도 금융위로부터 외국환거래법 개정에 따라 소액외환송금업이 금융실명법 상 금융기관에 해당한다는 의견을 전달받지 못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타부처 법률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까지 확인하는 것은 다소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소액해외송금업에 대한 입법공백 사태와 같은 사례가 앞으로 이어질 규제 혁신 입법 과정에서도 지속될 것으로 우려한다.

실제 금융위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을 비롯한 '규제혁신 5법' 대부분은 해당기관이 아닌 기관의 장이 규제특례를 부여하도록 되어 있다. 예컨대 중기부 장관이 보건복지부 소관 사항에 규제 특례를 부여하는 등 타 행정기관의 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관계자는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규제개혁을 콘트롤타워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규제혁신 5법은 추진기구가 파편화되어 있어 개혁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업계에서도 벤처투자를 비롯한 혁신성장 콘트롤타워를 요구하고 있다. 한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 정책에서도 나타나듯 혁신성장 관련 정책이 지나치게 산발적으로 분산되어 있어 갈피를 잡기 어렵다”며 “4차산업혁명위원회와 같은 민간 조직이 아닌 기업이 겪는 규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정부 단위의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