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계 연구윤리 다잡아야...연구 환경 개편도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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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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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연구계가 뒤숭숭하다. 부적절한 연구비 집행, 미성년 자녀 논문 공저자 포함에 이어 사이비 국제학술지 논문 게재, 유령 학술단체학회 참가까지 밝혀졌다. 일각에선 '터질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낡은 연구비 관리 시스템과 연구비 소진 관행 등이 빚어낸 결과물로 봤다. 연구계는 연구자 스스로 윤리 의식을 강화하는 동시에 연구비 정산을 포함한 연구 환경의 근본적 개편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연이은 부정, 비리 적발

“한마디로 참담하다. 억울한 사람도 있겠지만 전반적 모럴해저드다.” 과학기술계 한 관계자에게 최근 상황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연이은 부정, 비리 적발로 과기계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대학 교수가 자신의 논문에 미성년 자녀를 공저자로 끼워 넣은 사례가 수십 건 적발된 것이 시작이다. 연초 교육부가 2007년 2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발표된 논문을 점검한 결과, 교수 논문에 미성년 자녀를 공저자로 포함한 사례가 29개 대학에서 82건 확인됐다.

미성년 자녀를 교수 부모의 논문에 공저자로 등록해 입시용 경력(스펙) 쌓기로 활용한 '꼼수'다.

연구 윤리 논란은 '가짜 학회'로 이어졌다. 국내 상당수 연구자가 와셋(WASET, 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 등 가짜학회에 참석한 뒤 이를 학회 참석 실적으로 등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재단 연구자정보 시스템 분석 결과 한 연구자가 와셋에 22회 참석한 사례도 있었다. 학회 참석은 정부에서 지급받은 연구비로 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최근 한국연구재단이 서은경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의 대학교수 시절 연구비 유용 혐의를 제기하면서 과기계 충격은 배가 됐다. 서 이사장은 4차 산업혁명위원회 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직할기관 평가위원장 등으로 현 정부 과학기술정책 수립에 참여했다.

서 이사장이 전북대 물리학과 교수 재직 시절 지도 학생이던 A연구원은 20여 차례에 걸쳐 총 1200만원 상당 연구비를 허위로 신청했다. A씨는 서 이사장의 지도 학생이 학생 연구원으로 일하며 받은 인건비와 연구장학금 6000여만원을 연구실 경비로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한 대학 교수는 “현재 밝혀진 것은 정말 일부 사례만 나온 것 아니겠냐”면서 “그동안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연구 관행 가운데 사실상 비리와 맞닿은 부분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비단 과기계 뿐만 아니라 의료, 인문사회 등 전 분야에서 연구자 윤리를 다시금 세기고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구자 '자성' 연구환경 '개선' 시급

상황이 이렇자 과기계에선 '자성' '자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공학한림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연구윤리 제정에 착수했다. 과학기술 및 법조계, 정부 전문가 등 43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연구윤리 전문가 포럼을 출범시켰다.

김명자 과총 회장은 “무엇보다 연구자의 윤리 의식이 중요하다. 연구자의 경각심을 깨우고 자정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면서 “이후 비리, 부정을 저지르지 않은 학회에 더 많은 지원을 하는 방안 등을 시행하려 한다”고 밝혔다.

과기계에서는 연구비 정산 등 연구 시스템의 근본 개편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현재 낡은 연구 관행이 연구자 윤리 의식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봤다.

박상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연구비 정산 등 행정업무를 연구자가 수행하면서 '우리 돈'이라는 착각을 한다”면서 “연구자와 연구 행정을 분리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산학협력단을 포함해 대학 교수의 연구비 처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단계가 없다”면서 “연구 수행, 행정을 분리하는 것이 윤리 의식 확보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홍성태 과총 학술지발간지원 TF 위원장은 “가짜 학술대회에 포장해서 나가는 것은 연구비 과다, 즉 남는 연구비를 처리하는 관행도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안화용 연구재단 실장도 “연구비를 매년 정산하면서 남는 연구비를 소진하기 위해 가짜학회 등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연구비 다년 협약을 맺고 연구비를 이월 하는 방안이 국가 R&D 혁신 방안에 포함됐다. 성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출연연 한 관계자는 “가짜 학회는 사실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가려낼 수 있는 만큼 1회 참석자에 대해서도 징계가 필요하다”면서 “이와 함께 과기계 고위급도 규정에 위반되는 행위를 했다면 감싸기 보다는 명확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