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믿고 외화환전 나선 스타트업, 가상계좌에 발목

외화 배송차량.(사진=그레잇 제공)
외화 배송차량.(사진=그레잇 제공)

은행이 암호화폐거래소에 이어 온라인 외화 환전 스타트업에게도 가상계좌 발급을 중단했다. 정부가 온라인 기반 외화 환전 사업을 허용한지 넉달 만에 신시장에 뛰어든 스타트업이 위기에 처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1호 온라인 외화 환전 스타트업 그레잇은 주요 결제 수단이던 가상계좌 서비스를 쓸 수 없게 됐다. 최근 은행으로부터 가상계좌 발급 중단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앞서 정부는 올해 5월부터 핀테크 업체 대상 온라인 환전 사업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었다. 새 시장을 만들려는 기업 참가가 잇따르고 있다. 대부분 스타트업이 도전장을 냈다.

관세청에 따르면 관련법 개정 후 현재 3개 업체가 온라인 외화 환전 사업자로 등록했다. 추가 사업 참여 문의가 계속되고 있다는 게 관세청 설명이다.

하지만 최근 은행 12곳이 온라인 외화 환전 기업에 제공하던 가상계좌 발급을 전면 중단했다.

은행 관계자는 “온라인 환전 사업도 자금세탁방지법 관리업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며 “전면 중단이 아니라 자금세탁 방지 이슈로 당분간 가상계좌를 발급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계좌는 다수 고객을 확보한 기업이 사용자에게 부여하는 입금 확인번호다. 자금 입·출금 편리함을 높일 목적으로 도입한다. 쇼핑몰과 같은 온라인 기반 서비스 대부분에 활용될 만큼 보편화돼 있다. 국세, 지방세 납부에도 쓰인다.

가상계좌 재판매 업체에 대한 관리 누수도 요인으로 작용했다. 통상 가상계좌 재판매 업체는 은행으로부터 떼온 가상계좌를 온라인 환전 스타트업에 넘긴다.

그레잇 관계자는 “올해 3월부터 다섯 달 가까이 가상계좌를 써오다 지난주 갑자기 사용을 중단하라는 통보가 내려졌다”며 “정확한 사유도 모른 채 예고 없이 서비스가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언제 서비스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레잇은 현재 가상계좌를 일반계좌로 대체했다. 소비자 불편을 줄이기 위해 중개업체를 거치지 않고 은행에 직접 가상계좌 발급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비슷한 이유로 해외송금 사업자나 거래소도 발급에 애를 먹고 있다.

정부만 믿고 회사 문을 연 스타트업 사이에서 불만이 나온다. 규제를 없애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지속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근주 한국핀테크산업협회 국장은 “혁신적 서비스에 대한 금융권 지원이 필요하다”며 “사회이익 극대화 차원에서 적극 협업, 사업 기회를 함께 탐색하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