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스톡데일 패러독스

[기자수첩]스톡데일 패러독스

가계 빚 1500조원 시대가 멀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안심하라고 한다. 대출 규제로 증가세가 둔화됐다는 것이다. '증가율'만 놓고 보면 맞다. 2분기 가계부채 증가율은 7.6%로, 지난해 1분기(11.4%)에 비하면 양호하다.

그러나 증가액으로 따지면 해석이 달라진다. 2015년 3분기 이후 매분기 100조원(전년 대비) 넘게 증가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은 주춤한 반면에 신용대출이 확대된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신용대출이나 개인사업자대출로 부동산 자금을 충당하는 편법·우회 대출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

대출 규제만으로 가계부채 리스크를 낮췄다는 건 착각이다. 주담대가 줄어든 대신 '풍선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2013년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는 저금리 기조를 타고 가계 소득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3월 기준 가계부채는 가처분소득의 약 25배에 이른다. 갚을 수 없는 속도로 빚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흡연자가 자신의 폐암 가능성을 낮게 판단하는 것과 유사한 심리다. 가계부채 리스크가 단기간에 터지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주의가 팽배하다.

가계부채 대응에서 '스톡데일 패러독스'가 필요하다. 낙관주의에 빠지는 대신 어두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재정정책(대출 규제)만으로 가계부채를 잡는 데는 한계가 있다. 통화 긴축 정책이 필요하다. 그로 인한 추가 이자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이제는 금리 인상 시기를 검토해야 할 때다.

한국과 미국 간 금리 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도 잊으면 안 된다. 이미 올해 들어 두 차례 금리를 인상한 미국 중앙은행(FED)은 9월 한 차례 추가 인상을 앞두고 있다. 그럴 경우 한·미 간 금리 차는 0.75%포인트(P)까지 벌어진다. '자본 유출 우려는 적다'고만 일관할 상황이 아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개최(31일)가 얼마 남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각종 경제지표 악화 등으로 '연내 동결' 가능성까지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마냥 금리를 동결시키기에는 대내외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함지현기자 goh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