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3000억 이란 수출 사업 '백지화', 졸속 추진 비판

2016년 이란을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을 접견하고 있다.(자료: 전자신문 DB)
2016년 이란을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을 접견하고 있다.(자료: 전자신문 DB)

지난 2016년에 이란 정부와 체결한 대규모 보건의료 수출 협약이 백지화됐다. 병원, 제약, 의료기기, 의료시스템 등 2조3000억원에 이르는 경제 효과를 자랑했지만 양해각서(MOU)만 남발한 채 후속 조치는 전무한 실정이다.

28일 정부기관에 따르면 2016년 한·이란 보건의료 협력에 따라 우리나라와 인도는 총 18개 MOU를 교환했지만 후속 사업은 한 건도 진행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2016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 이란 순방 계기로 한·이란 보건의료 협력 MOU를 교환했다. 이란 정부가 추진하는 6개 병원 건립에 우리나라 건설사, 병원을 우선 참여시킨다.

제약, 의료기기, 병원정보시스템, 건강보험심사시스템 등도 우리나라 제품을 우선 도입하는 것이 골자다. 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행정 지원하고, 한국수출입은행이 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병원 건립 6건, 제약 5건, 의료기기 2건, 건보시스템 2건, 협회 간 3건 등 총 18건 MOU를 교환했다.

복지부는 경제 제재에서 벗어난 이란 보건의료 시장을 선점해서 5년 동안 2조3000억원 규모 경제 효과를 기대했다. 우리나라 건설사를 포함해 제약, 의료기기, 병원 등 다양한 산업군에 막대한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협약 체결 직후 문제가 생겼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이란 중앙은행과 지급보증 문제로 자금 지원이 어렵게 된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대부분 사업은 수출입은행이 재원을 마련했고, 회수를 위해 이란 중앙은행이 지급 보증을 했다”면서 “이란 중앙은행이 미국의 경제 제재가 다시 가해지면 지급이 어려울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사업이 중단됐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병원정보시스템을 도입한 킹 압둘라지즈 메디컬시티 젯다 병원
우리나라 병원정보시스템을 도입한 킹 압둘라지즈 메디컬시티 젯다 병원

2조3000억원 규모 경제 효과를 내세운 보건의료 수출 사업이 진척되지 못한 표면상 이유는 국제 정세 변화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면밀한 검토 없이 '숫자'에만 집중한 정부에 있었다.

2016년 1월 이란 경제 제재가 풀리면서 중국·일본 등이 시장 선점을 위해 발 빠르게 뛰었다. 우리도 5월 박 전 대통령이 방문했지만 에너지, 교통, 건설, 호텔 등 상당수 분야는 다른 나라가 선점했다. 보건의료 분야라도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장기 투자가 이어져야 하지만 단기성과 도출에 매몰돼 일자리, 수출액 등 실현 가능성이 없는 숫자 높이기에만 몰두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지에서 면밀한 시장 조사 없이 시장 규모나 제품 단가 조사 바탕으로 만들어진 게 2조3000억원이라는 경제 효과”라면서 “박 전 대통령 순방 일주일 전부터 기업·협회에 민간 차원에서 MOU 교환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 부담이 컸다”고 털어놨다.

다른 업계 관계자도 “복지부에서 MOU를 교환할 것이라고 관련 자료를 요청하고, 이란 현지 협회에서도 연락이 왔다”면서 “MOU 후 이란 측에 연락했지만 회신이 없었고, 복지부도 특별한 지시가 없었다”고 말했다.

사업은 6개월 만에 후속 조치가 어렵다는 판단 아래 사실상 폐기됐다. 사업을 맡은 복지부 국제의료사업지원단도 없어졌다. 병원 업계 관계자는 “이전 정부는 물론 현 정부도 보건의료 산업 특수성을 외면하고 수치로 드러난 단기성과 도출에만 집중하고 있다”면서 “이란 사업 실패는 국가 기반 사업 부진을 보건의료 등 신 영역에서 숫자로 메우려는 대표 사례”라고 지적했다.

<주요 협약 내용>

2조3000억 이란 수출 사업 '백지화', 졸속 추진 비판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