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태생부터 다른 그들, 다른 행보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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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간 게임업계는 무노조였다. 제조업과 다른 산업 특성 때문에 노조설립 필요성이 늦게 대두했다. 태생이 다른 만큼 추구하는 방향도 다르다.

게임업계 노동 강도는 센 편이다. 유머로 희화돼 회자될 정도다. 게임업계에서 일하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좋아서 진로를 택한 경우가 많다. '내가 좋아서'라는 단어는 힘든 일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산업 태동기 좋아서 밤낮없이 일했던 사람들이 만든 전설적인 업적은 산업 기저에 신화처럼 깔렸다. 불평을 표한다는 건 직업 자부심에 균열을 내는 행위였다.

게임산업은 타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근무환경을 갖고 있다. 탄력·유연 근무제가 옛날부터 자리 잡았다. 유연한 근무시간은 근로자들을 흩어놓는 동시에 근무조건 불만을 서로 나눌 수 없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최근 거대회사들이 자회사 위주 스튜디오로 재편하면서 '모래알 근무'는 심화됐다. 기업 규모는 커졌지만 조직은 작아지는 형태였다.

젊은 문화도 노동자 조직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다. 창의·창발로 대표되는 조직문화에서 개인주의는 배척 대상이 아니었다. 협력은 하되 작업은 혼자서 했다. 또한, 노동자 대부분이 사회활동이나 조직화 경험이 별로 없던 이유도 있다. 집단행동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이처럼 제조업과 태생이 다르다. 이들이 추구하는 방향도 약간 다르다. 게임업계 노조는 사회적 책임과 연대를 강조한다. 제조업 노동쟁의 행태에 대해서도 무조건 따라가지 않는다고 선을 긋는다.

게임 노조는 비정규직을 끌어안는다. 제조업 노조에서 정규직과 하청업체 비정규직 근로자를 모두 아우르는 단일 노조는 많지 않다. 게임사 노조는 QA, CS 등 비정규직이 많이 분포하는 직군 목소리도 대변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배수찬 넥슨지회장은 “게임 성공 기쁨을 다 같이 누려야 한다”며 “QA도 과실을 나눠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배 지회장은 “머리에 띠 두르고 나가는 것이 우리와 맞을까 생각해보면 의문”이라고 말했다.

넥슨지회와 스마일게이트지회는 모두 '게이머(게임 이용자)와 함께하는' 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모바일 시대로 넘어오면서 급격히 잃은 게이머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조가 의견을 제시한다. 궁극적으로 게임 노조 최대 수혜자는 게임이용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시장이 모바일 게임으로 재편되면서 국내 게임은 부분유료화와 반복 콘텐츠(그라인딩) 두 축으로 성장했다. 부분유료화는 게임 내 결제를 통해 제화나 아이템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대부분 확률형 뽑기로 구성된다. 처음에는 뽑기 쾌감에 매료됐다. 하지만 곧 게임 이용자들은 1% 미만 확률이 범람하는 탓에 피로감을 호소했다.

그라인딩은 게임 생명주기를 늘리기 위한 기획이다. 보상을 얻기 위해 특정 콘텐츠를 반복하게 한다. 이용자 행위가 강제된다. 게임 이용자들은 게임 본질인 즐거움과 점점 거리가 멀어져가고 있다며 업계에 등을 돌렸다.

최근 세계보건기구가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지정한 사례에서 게임 이용자 반응 변화를 찾아볼 수 있다. 과거 여성가족부가 셧다운제를 시도할 때 게임 이용자는 게임사 의견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이번 질병지정 때는 '요즘 게임은 사행성 도박과 다름없다'며 냉소적인 시선을 보냈다.

게임 노조는 포괄임금제 폐지, 장시간 노동 근절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노조 설립 회사만이 가진 문제는 아니다. 게임 업계는 함께 성장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이직이 잦았고 업력이 오래되지 않아 뿌리를 찾아가면 거기서 거기인 탓이다. 이 때문에 관계자들은 노조 설립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넥슨, 스마일게이트가 산별노조로 가입해 기업 이기주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