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민·관 협력해 무역기술장벽(TBT) 넘고 경쟁우위 확보해야

김봉석 LG전자 제품시험연구소장
김봉석 LG전자 제품시험연구소장

미국발 관세 전쟁으로 세계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유럽연합(EU), 캐나다 등은 미국의 강력한 통상 압박에 보복 조치를 단행하는 등 세계 자유무역 질서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더욱이 세계 각국은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며 관세뿐만 아니라 무역기술장벽(TBT)과 같은 비관세 영역까지 벽을 높이고 있다.

경제개발기구(OECD) 2015년도 보고서에 따르면 비관세 장벽의 관세 환산치는 13.7%로, 세계 평균 관세인 7.7%보다 높다. 그 가운데 TBT는 7.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2000년 1449건이던 비관세 조치가 2017년에는 3131건으로 216% 증가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되는 기술 규제 통보 건수 또한 2017년 2585건에서 2018년 상반기 1674건으로 증가세에 있다. 과거 선진국의 전유물이던 기술 규제가 최근 개발도상국으로까지 확산되면서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대체로 전문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는 기술 규제 정보를 입수, 분석, 대응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산업자원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은 TBT의 대응 체계화와 기업 애로 사항 해결을 위해 'TBT 중앙사무국'를 운영하고 있다. TBT 중앙사무국은 민간 기업과 협력해 WTO 산하 위원회, 규제 당사국 등을 직접 방문해서 협상하는 것은 물론 WTO에 통보되는 기술 규제를 분석하고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숨은 규제를 발굴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불합리한 규제의 시행을 유예시키고 상호 시험 인증제를 시행한 것은 수출 기업의 시장 경쟁력을 강화한 좋은 사례다.

민·관이 TBT에 적극 대응하고 있지만 WTO에 통보되지 않은 개도국의 숨은 규제와 신제품 및 신기술 규제로 인해 리스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 사이버보안 등 분야에서 선진국은 기술 선점을 위해 자국 표준을 국제 표준에 반영시키는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우리도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신규 규제 주도권을 장악하고, WTO에 통보되지 않은 잠재된 규제 리스크를 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에 대해 산업계와 정부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새롭게 등장하는 융·복합 제품을 관장할 수 있는 전문위원회를 두고 표준 제안에서부터 규격 제정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둘째 FTA 협상 시 주요 수출국 규격 기관 대상으로 업무 협약 등을 통해 신규 규제 리스크를 해소하고, 숨어 있는 규제를 더욱 적극 발굴해야 한다.

셋째 TBT 대응에 다소 취약한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TBT 설명회, 업종별 간담회, 홍보 등을 통해 TBT 관심을 높여야 한다. 기업도 TBT 극복이 장기로는 기업 경쟁력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문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 산업계, 학계, 연구기관 등이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해야 한다.

오는 10월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총회가 부산에서 열린다. 이번 총회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표준화 작업을 주된 주제로 하여 97개 기술 위원회(TC/SC) 회의가 열리고, 85개국 3000여명의 표준 전문가들이 참석한다. 이번 총회를 발판으로 우리나라가 국제 규제를 주도할 수 있는 룰메이커로 도약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봉석 LG전자 제품시험연구소장 bongseog.kim@lg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