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증이 해킹됐다...주민증 지문+스마트폰+점토 한덩이에 인감증명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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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촬영 후 스캔한 형상 클레이에 찍어 손쉽게 위·변조

1일 생체인증기관 리얼아이덴티티 직원이 서울 공덕역에 마련된 무인발급기에서 점토(클레이)에 인쇄된 지문으로 공문서를 출력하고 있다. 플라스틱 주민등록증 뒷면에 인쇄된 지문과 점토로 주민등록증, 행정문서 등 각종 등기부 등본을 출력할 수 있다. 김동욱기자 gphoto@etnews.com
1일 생체인증기관 리얼아이덴티티 직원이 서울 공덕역에 마련된 무인발급기에서 점토(클레이)에 인쇄된 지문으로 공문서를 출력하고 있다. 플라스틱 주민등록증 뒷면에 인쇄된 지문과 점토로 주민등록증, 행정문서 등 각종 등기부 등본을 출력할 수 있다. 김동욱기자 gphoto@etnews.com

위조한 점토 지문으로 공문서 출력.
위조한 점토 지문으로 공문서 출력.

주민등록증 뒷면에 부착된 지문, 스마트폰, 점토(클레이) 한 덩이만 있으면 국내 모든 관공서 무인발급기와 지하철 내 민원발급기 3000개 이상이 해킹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리콘 등을 악용한 페이크 지문 해킹이 이젠 주민등록증 지문을 악용하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상황이 이런 데도 행정안전부 등 정부 부처는 주민등록증 체계 개선과 관리에 손을 놓고 있다.

1일 전자신문 취재팀과 생체 인증 전문 기업 리얼아이덴티티(대표 이섬규) 산하 생체인증연구소는 주민등록증 뒷면에 부착된 지문을 스마트폰으로 촬영, 변조해서 동사무소와 지하철 내 무인발급기를 이용한 결과 대부분 해킹이 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 지문을 3D프린터 등을 이용해 복제한 사례는 있었지만 플라스틱 주민등록증에 기재된 지문을 위·변조해 악용이 가능한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 첫 실험이다.

지문을 위조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타인 주민등록증 뒷면에 실린 지문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형상을 만든다. PC에서 각종 스캔 프로그램 등을 이용하면 10여분 만에 지문 복제가 가능하다. 이 지문 형상을 클레이에 그대로 찍어 동사무소 무인발급기 등에 인증하면 각종 서류가 쏟아져 나온다. 단 두세 번만에 주민등록 등·초본은 물론 인감증명 등 각종 증명서와 돈이 오갈 수 있는 서류까지 발급이 가능했다. 주민등록증을 분실할 경우 민원서류는 물론 여러 금융서비스 분야까지 악용이 가능하다.

올해 1월 기준 국내 무인발급기는 3665대에 이른다. 이 같은 위·변조 방식을 활용하면 인감증명은 물론 부동산과 관련된 민감한 자료 등을 지문 위·변조로 타인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인 발급기뿐만 아니라 타인이 분실한 주민등록증과 분실폰을 이용해 제2 저자 등록을 해 놓고 악용할 가능성도 있다. 비밀번호 등 투팩터 인증을 거쳐야 하지만 비밀번호 해킹 도구를 함께 활용하면 금융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다. 은행 ATM은 물론 온라인 쇼핑과 돈을 탈취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 밖에도 부동산 매수·매도 증명서를 탈취해 위조해서 사용할 수 있고, 심지어 신분세탁용 주민증을 발급받을 수도 있다. 각종 금융기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지문 인증이 오른쪽 엄지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지문이 주민등록증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는 셈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재정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분실된 주민등록증은 926만건에 이른다. 반면에 습득 신고는 35만여건에 그쳤다.

보안업계와 금융권에서도 스마트폰 발달로 분실한 주민등록증에 기재된 타인의 지문을 악용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생체 정보 수집 반발과 막대한 돈이 든다는 이유로 전자신분증 체계 전환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 지문을 신분증에 복사해서 노출하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나이지리아,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등 후발국조차 통합 전자신분증을 발행한다. 지문 등 생체 정보를 집적회로(IC) 칩에 보관, 노출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이기혁 중앙대 교수(한국FIDO산업포럼회장)는 “주민증 뒷면 지문 정보를 위·변조한다는 건 한국 국민 모두의 정보를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라면서 “금융권에서 생체 정보 분산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지문 정보 자체가 노출됐기 때문에 2차 사고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한국의 주민증 체계를 전자신분증으로 모두 바꿔야 한다”면서 “해외처럼 IC 칩에 생체 정보를 담거나 신분증을 잃어도 지문 자체를 위·변조할 수 없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운호 한국정책학회 부회장도 “스마트폰 아니라 각종 정보기술(IT) 기기에 생체 인증이 접목되는 파이도 2.0시대가 도래했지만 지문 정보를 관리하거나 보안 취약점을 강화하는 노력은 부재하다”면서 “이제 한국도 다른 국가처럼 모든 신분증을 하나의 카드에 집적시키는 통합 전자신분증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 정영일기자 jung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