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교수포럼의 정책 시시비비]<18>사회 정책 숙의제 늘리자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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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초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2017년에 역대 최저 출산율(1.05명)을 기록했고, 올해 출산율은 1.0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 예측된다. 이대로라면 2022년엔 출생아 수 20만명대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담았다. 이에 대해 한 사설은 “가히 사회 재앙이다”라고 평했다.

그런데 최근 “저출산은 재앙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있어 눈길을 끈다. 주장에 따르면 저출산 문제가 화두가 것은 2005년 합계출산율이 1.08명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이다. 이대로 가면 국가가 소멸한다거나 성장이 정체될 거라는 얘기가 쏟아졌다. 정부도 이즈음 저출산고령사회위를 꾸렸고, 이후 10년 동안 122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그 결과 2017년 출산율이 1.05였다는 것이다.

이 비상식 주장의 흥미로운 부분은 대안이다. 출산율을 높여서 현재 경제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생각을 접고 역설이지만 '역동하는 고령사회'를 기꺼이 맞아들이자고 한다. 인구가 힘이라는 생각 대신 우리 사회의 인식과 통념을 바꾸면 그 속에 다른 희망과 정책을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상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저출산 문제를 논하거나 이 제안의 시시비비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과 대안으로 정책 숙의제를 생각해 보자는 데 있다.

최근 정부 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하는 사회 문제가 많다. 심지어 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하기도 버거워 보일 때가 있다. 비난은 정부와 정책을 향하기 십상이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그럴 일만도 아니다. 저출산 문제만 해도 지난 10년 동안 이런저런 정책을 실시해 오지 않았는가. 굳이 원인을 찾는다면 이런 사회 문제에 우리가 준비한 합의와 공론이 없다는 것이 먼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궁극으로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것이 정부라고는 하지만 정부가 만능일 순 없다. 특히 정책으로 사회 공론을 형성하기는 더욱 어렵다. 어쩌면 정책은 사회 공론 위에 쌓여 갈 때 비로소 온전히 효과를 발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참여형 정책 숙의나 정책 숙려라는 과정을 몇 차례 경험한 바 있다. 대표로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관련 공론 조사나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를 들 수 있지만 그 전에도 유전자조작식품(GMO) 관리, 사용후핵연료 처리, 부동산 정책 등에 국민 참여 방식이 동원됐다.

물론 어떤 공론 과정은 다양한 의견이 있음을 확인하는 정도에 그쳤고 대입제도 경우 공론화 과정이 만능이 아님을 보여 줬다고도 평할 수 있다. 그러나 공론화 조사를 통해 대입 전형 가운데 어느 것이 공정하다고 보는 '다수의 여론'이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만으로도 나름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정책이 만능일 수 없듯 정책 숙의제 역시 만능이 아니다. 대입제도 공론화 과정을 거쳐 발표한 국가교육회의의 권고안엔 어느 집단도 만족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 만큼 역설이지만 이 과정이 서로의 생각과 대중의 일반 관심을 잘 보여 줬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정책 숙의제에 거는 몇 가지 다른 기대도 있다. 비록 이 과정이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지 못할 수 있지만 수용성은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다. 공론화를 거친 이슈에 대해서는 정책이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다. 만일 공론화가 정책의 대원칙을 세우는 것이라면 정부가 바뀌더라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심 다른 기대도 한 가지 더 해 본다. 어쩌면 나와 다른 생각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보면서 서로 학습해 나가는 과정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정책 숙의제의 장점은 생각보다 클 수 있다.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동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