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한국사회에서 주류가 되지 못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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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철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이명철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최근 과학기술계 소식이 사회이슈가 됐다. 안타깝게도 연구윤리, 부실학회 관련 연구비 유용 등 부정적 뉴스다. 연구현장에서 발 빠르게 자정노력 대책을 발표했지만 이후 해외출장과 관련된 국회 요구 자료가 빗발치고 있다. 이제 해외 출장을 나갈 때 증빙서류 작성 등 행정절차가 복잡해질 전망이다.

한림원은 각국의 과학한림원과의 국제교류가 주요 역할인 만큼 이후로도 해외출장에 소극적일 수 없지만 서류작업에 보다 많은 시간을 소요해야 할 것은 자명하다. 이렇게 악순환의 고리는 더 견고해진다.

밤낮없이 연구개발에 매진하는 연구자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과학기술계가 비리·적폐의 대상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이 억울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인 커뮤니티' 차원에서 보면 이러한 결과가 초래된 것은 어느 한 사람, 혹은 일부의 문제 때문이 아니다. 과학기술인 커뮤니티가 그동안 '과학 본연의 역할'을 찾기 위해 세계 조류에 역행하는 국내 흐름에 저항했는가 아니면 본인과 학계 이익을 위해 잘못된 관행에 편승했는가를 자성해야 한다.

국내 과학기술계에서 핵심 주제가 된 '4차 산업혁명'만 해도 그렇다. 최근 심포지엄에서 '4차 산업혁명'이란 키워드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을 한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자 연구주제를 이와 연계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물론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미래기술개발은 연구계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공학을 비롯해 산업 연계가 높은 학문 분야에서는 반드시 집중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모든 연구개발 이슈와 자원이 여기에 매몰되면 앞으로도 과학은 국가사회에서 주도권을 잡기 어렵고, 국제 과학계 주류와 동떨어져 리더십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지난해부터 개최한 '한국과학주간'이 올해도 10월 22일부터 엿새간 열린다. 노벨상수상자 2인을 포함해 80여명의 각국 한림원대표단과 국내외 석학이 연사로 참여하는 대규모 국제행사다. 올해의 주제는 '지속가능한 발전과 인권'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과학기술이 해야 할 역할을 찾고, 특히 인권에 대한 부분을 여러 관점에서 다룬다.

'기후변화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선제적으로 고민해보고,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초미세먼지 현황과 대책'을 위해 관련 분야 국내외 석학을 초빙했다.

주변에서 많이 받은 질문 중의 하나가 '왜 주제를 지속가능한 발전과 인권으로 정했나'다. 4차 산업혁명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고 최근 국내 이슈와는 크게 관련이 없어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반대로 해외 석학의 반응은 뜨겁다. 미국과학한림원(NAS) 전 원장이 자발적으로 참석하기로 했고, UN 전문가 위원도 다수 참여한다. 각국 한림원의 최근 숙제가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DGs) 달성을 위한 과학기술의 역할'을 찾는 것이다 보니 미국, 독일, 일본, 캐나다 등 한림원 원장·부원장이 아이디어를 얻고자 토론자로 참여한다. 과학기술계 국제기구 활동에 참여하며 파악한 세계적 이슈와 정책 변화를 반영한 덕분이다.

우리도 과학기술인이 지성인이자 전문가로서 존중받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인 커뮤니티의 변화가 필요하다. 먼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만큼 '올바른 정책수립을 위한 과학기술의 역할'에도 주력해야 한다. 또 사회와 과학 간의 가교가 보다 넓어질 수 있도록 인문사회학자와 적극 교류해야 한다.

일본정부는 사회·경제를 둘러싼 글로벌 환경의 변화를 인식, 제5차 과학기술 기본계획(2016~2020년)의 두 축을 '소사이어티 5.0 구현'과 '경제사회적 문제해결'로 삼고 관련 연구개발을 중점 추진하했다. 일본 과학기술계 의견도 반영된 것이다. 과학 커뮤니티가 먼저 사회 속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국가과제로 제시할 수 있어야 그만큼 인정받는다.

그간 한국사회에서 과학이 지류에만 머무른 데는 한림원이 제 역할이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부분도 크다. 한국과학주간을 시작으로 과학이 먼저 새로운 목소리를 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이명철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mclee@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