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게임중독이 '정신질환'이라고? 임상 근거 미약한 WHO 판단 "신중론" 입장 거세

[이슈분석] 게임중독이 '정신질환'이라고? 임상 근거 미약한 WHO 판단 "신중론" 입장 거세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질병분류(ICD)에 게임장애 정신건강질환 등재를 앞두고 있다. '게임 질병코드화'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WHO는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등재한 국제질병분류 11차개정(ICD-11)을 올해 6월 공개했다. ICD-11이 확정되는 시기는 내년 5월 예정된 WHO 총회다. 보건복지부 역시 WHO 게임중독 질병 분류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도 WHO 게임 질병코드화 움직임에 대한 찬반이 극명하게 갈린다. 의학계에서도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지에 의견이 엇갈린다. 일각에선 아직도 임상 근거가 부족한 '게임중독 질병 분류'를 두고 신중론 입장이 거세다. 게임 산업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개인 취미활동이 '정신질환'으로 분류돼, 중독자로 낙인찍히면 또 다른 사회적 부작용을 낳는다는 우려도 크다.

[이슈분석] 게임중독이 '정신질환'이라고? 임상 근거 미약한 WHO 판단 "신중론" 입장 거세

◇게임업계 “WHO, 의학적 근거 미약한데 무리한 정책 시도”

게임업계는 WHO가 무리한 정책을 시도한다는 의견이다. 한국게임산업협회, 미국 게임산업협회(ESA) 등은 WHO가 ICD-11 초안에 게임장애를 정신건강 질환으로 분류하는 것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이들 단체는 '비과학적 게임 질병화 시도에 반대하며, ICD-11 개정안 관련 내용 철회를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세계에서 온라인, 모바일, 콘솔 등 다양한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는 약 20억명에 달한다. 이들 단체는 “이런 정의와 진단기준으로 20억명이 일상으로 즐기는 문화콘텐츠를 질병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 이들을 중독자로 분류하면 올 수 있는 파장은 무엇인지 등 상식 차원에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게임을 정상적으로 좋아하는 청년도 중독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면서 “게임중독 코드 반대에 동참할 범사회 연대체를 구성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미국 존스홉킨스대, 호주 시드니대 등 정신건강·사회과학 분야 연구자 36명도 임상심리학 분야 학술지인 '행동 중독 저널'에 논문을 투고해 WHO 방침을 비판했다. WHO 주장에 근거가 없다는 게 핵심이다. WHO가 제시한 게임 중독 기준이 모호하며 의·과학적 근거가 미약하다는 지적이다.

개인·지역·국가별 게임이용 행태가 달라 통일된 진단 기준을 만드는 게 어렵다. 한국게임산업협회 관계자는 “모바일, PC 게임과 지역·국가별 활동 빈도에 따른 중독 범위가 모호하고, 광범위하다”면서 “질병코드로 분류하려면 통일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자의적인 잣대로 게임중독자를 질병자로 걸러낼 우려가 높다. WHO 근거가 지나치게 모호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세계적으로 게임과몰입 등 중독현상을 보는 연구자 설정 기준도 제각각이다. 그 중 의학적 소견과 풍부한 연구 결과 등에 기반을 둔 질병 모델 입장이 대두되지만 그 실체나 구체적 기준이 모호하고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개인 유병률이 낮고 그 현상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 과대한 해석이 오히려 패닉을 야기한다. 객관적 규명과 합의 없이 제도화되면 게임 산업과 이용 문화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이어진다.

나아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면 다른 공통된 특징을 가진 중독 현상도 질병으로 분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온다. 일례로 디지털 시대에 컴퓨터나 모바일을 이용한 모든 활동에서 중독을 겪는 사람이 늘었다.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면 '인터넷 중독' '스마트폰 중독' 등도 질병으로 분류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공부도 하루 10시간 하게 되면 중독으로 분류, 정신질환이 되는 것이냐”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보는 ICD 개정안은 규제 강화로 이어진다. 현재 각국에서는 술이나 담배도 별도 세금을 부과한다. 게임중독으로 게임이 분류되면 여기에 따르는 치유 부담금 등 세금이 부과될 가능성도 높다. 지난 11일 국회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은 카지노·경마·경륜·경정·복권 등 다른 사행산업과 같이 게임업체에 게임중독자 예방·치료에 사용하기 위한 게임중독예방치유부담금 부과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국내에서 카지노, 경마, 경륜, 복권 등을 규율하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서는 사행산업 사업자에게 전년 순 매출 0.35%를 도박중독예방치유부담금으로 부과한다. 게임업계는 게임을 사행산업으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슈분석] 게임중독이 '정신질환'이라고? 임상 근거 미약한 WHO 판단 "신중론" 입장 거세

◇의료계도 찬반 엇갈려

WHO는 게임 중독을 정의 내릴 때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며, 중독성이 지속되고, 부정적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게임을 계속적으로 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의학계는 이 같은 게임 중독 질병 분류에 대해 찬반이 엇갈린다. WHO 임상 실험 데이터 부족, 진단 기준 모호성 등도 문제다. 게임 과몰입과 정신질환 상관관계 등이 심층 연구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난달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개최한 '게임문화의 올바른 정착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에서 “내성과 금단증상 등이 수반돼야 중독으로 인정할 수 있는데 게임중독은 이 부분이 규명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의학 관점에서 병리를 진단하기 위한 기준이 체계적으로 설정된 후 질병 분류를 논해야 한다. 실제로 게임중독은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DSM-5)'에서도 정식 질환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심각한 게임 중독이 발병한 이들의 공통된 특징도 있다. 게임 중독이 정신건강질환으로 등재되면 가벼운 우울증, 불안장애, 주의력결핍장애(ADHD) 등도 게임중독과 연관지어 분류될 위험성도 있다.

반면에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임상학적으로 게임을 과도하게 사용해서 일상생활기능 장애가 발생한 사례가 유의미하게 늘었다”면서 “공중보건학 관점에서 건강 폐혜가 심각하다는 것이 뇌영상 연구 등을 통해 입증된다”고 말했다. 이어 “유병률은 전체 인구 중 1~2%이고,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복지부 “게임중독 질병코드 정해지면, 수용”

복지부는 WHO 흐름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WHO에서 확정적으로 게임장애 질병 코드가 정해지면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KCD)를 주관하는 통계청을 압박해 정기 개정보다 앞당기겠다는 의미다. KCD는 2020년 개정될 예정이다. 한국은 WHO가 발표한 ICD를 골자로 한국 상황에 맞춰 KCD를 제정한다. WHO 질병 분류에 따라 국내 의료기관에서도 통계청과 복지부, 문체부, 교육부 등 협의를 거쳐 게임중독이 공식 질환으로 등재될 수 있다. WHO에서 질병으로 분류면 국내에서도 건강보험에서 본격 수가 등재 등이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ICD-11이 확정되면 통계청이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를 국내 반영한다.

사회 합의가 절실하다. 복지부 관계자는 “게임중독은 WHO가 질병으로 인정할 만큼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면서 “한국에서 청소년 게임 중독 등으로 인한 개인, 사회 문제가 심각하다”고 밝혔다. 이어 “게임 과몰입과 중독으로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을 코드로 등록해 의학 치료 도움이 필요한 환자를 정식 등재해 치료한다면 보건의학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복지부의 이 같은 판단이 성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관련 부처 협의 등을 거치지 않은 사안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중독 질병코드와 통계청 등재는 복지부뿐만 아니라 여러 부처 합의를 거쳐야 한다”면서 “복지부가 독자 발언해서는 안 될 중대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장윤형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wh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