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경]이념 당위성과 정책 속도

'정부가 정책을 만들면 민간은 대책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시장에 적합한 정책이 시의적절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뒷북이거나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요즘 청와대 밖 사람을 만나면 '청와대가 시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털어놓는다. 고용비 높이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면서 기업에 일자리는 늘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야박하다고 푸념한다. 근로시간 단축이 고용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계산이 시장에 먹히지 않는 실정이다.

내년이면 문재인 정부는 국정 3년차에 접어든다. '속도'와 '성과'가 1순위 주문일 것이다.

국무회의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국무회의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이 꼬인 것은 현장 상황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고민 없이 정책 속도만 높였기 때문이다. 탈원전과 최저임금 1만원은 과속 질주로 논쟁에 휩싸였다. 탈원전 문제는 산업이 아닌 환경 측면에만 의미를 뒀고, 최저임금은 단순 노동복지로 접근했다. 미래 에너지 수요 등 짜임새 있는 에너지 전환 체계를 그리지 못했다. 사회 분배 체계 재조정이라는 큰 틀에서 설계가 부족했다.

어떤 분야에선 '속도'가 미덕일 수 있다. 그러나 복잡하게 얽힌 경제·사회 문제일수록 지혜가 더해져야 한다. 이념 당위성이 정책 속도의 명분이 될 수 없다. 속도가 느리더라도 시장과 기업 및 산업이 보조를 맞춰야 한다. 국회도 함께 가려 노력해야 한다. 도로에 과속 방지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속도감을 강조할수록 시간에 쫓기게 된다. 경제 현실을 직시하고 '일자리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지 다시 고민해야 할 때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