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38>스몰 아이(i)와 빅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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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4년 가을 한신은 조나라를 공략한다. 조왕 헐(歇)은 목 좁은 정형 입구 성곽에 군사 20만명을 집결시킨다. 한신이 정형 입구에 도착하니 이미 깊은 밤이었다. 한신은 병사들을 독려해서 저수를 건너가 배수의 진을 치게 했다.

새벽안개가 걷힐 즈음 저수를 건너서 배수진을 친 한신을 보며 조나라 장수들은 피식 웃었다. 신출귀몰하다는 한신이 퇴로도 없이 군을 배치하다니. 물고기 밥으로 만들려고 조나라 군사들은 성을 나와 맹공을 퍼부었다. 한참 혼전이 벌어지고 나서 점심시간에 맞춰 성으로 돌아온 조나라 군사들은 깜짝 놀랐다. 성루에 한신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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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이자 맥기술혁신연구소 소장이기도 한 조지 데이에게는 오랜 연구 주제가 하나 있었다. 왜 기업은 고성과 혁신을 회피할까. 실패 위험이 그만큼 높은 탓일까.

실상 글로벌 기업들조차 85%에서 90%를 작은 혁신(스몰 아이)에 투자하고 있었다. 큰 혁신(빅 아이)에서 이윤의 61%가 나왔지만 20.1%에서 11.5%로 오히려 포트폴리오를 줄였다.

기업은 성장을 말하지만 위험을 감당하기는 원치 않았다. 당장 눈에 보이지만 실패 위험이 없는 작은 혁신은 괜찮아도 위험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빅 아이'를 그리려다가 '스몰 아이'로 끝나기 일쑤였다.

과연 큰 혁신은 작은 혁신에 비해 위험한 것일까. 1989년 맥도날드는 피자를 판매하기로 한다. 성공을 자신했다. 고객은 전과 다를 바 없었고, 패스트푸드기도 마찬가지다. 가격이 예상보다 좀 높았지만 푸짐한 한 끼 먹을거리인 데다 맥도날드의 자랑인 균일한 품질을 제공할 수 있었다. 리스크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맥피자 프로젝트는 곧 실패로 판명난다. 사후 진단 과정에서 찾아낸 문제는 단순했다. 그릴 피자를 30초 안에 만들어 낼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11분이나 걸렸고, '퀵 서비스'란 맥도날드 가치에 맞지 않았다. 게다가 고객 누구도 맥도날드를 피자 브랜드로 생각하지 않았다.

정반대 사례도 있다. 유럽 저가항공 시장을 만든 이지젯은 2000년에 렌터카, 2005년에 크루즈 사업을 시작한다. 전문가들은 곧 실패하리라고 봤다. 고객 태반은 기존 고객이 아니었다. 저가라는 이지젯의 브랜드와 유람선은 어딘가 차이가 있었다.

리스크는 당연히 커 보였다. 대부분 항공사가 굳이 원하는 승객이 있다면 수수료를 받고 중개하는 것으로 만족해 한 이유이기도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른바 가성비 지향 고객은 이곳에도 있었고, 여기서 이지젯은 신뢰할 만한 브랜드였다. 신사업이었지만 위험은 맥도날드 피자보다 낮은 셈이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배수의 진이란 결사 항쟁을 의미하는 마지막 선택이다. 그러나 한신이 펼친 배수진은 달랐다. 정형 골짜기를 가로지른 요새는 난공불락이었다. 조나라 군사를 성 밖으로 끌어내야 하자니 허점을 보여야 했다. 게다가 텅 빈 성은 기습으로 뺏을 수 있고 배수진에 갇힌 한신의 군졸들은 죽기 살기로 싸울 터였다. 정형에서 한신이 펼친 배수진은 50척 높이 성벽에 올라타야 하는 공성전에 비해 훨씬 안전하고 계산된 선택인 셈이었다.

결국 위험은 빅 아이 혁신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아니었다. 제약은 정작 우리의 안목 없음에 있은 셈이었다. 이만하면 혁신 전략도 가히 춘추전국 병법에 비견할 만하지 않은가.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