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39>나만의 디자인 경영

글자 작게 글자 크게 인쇄하기

새 항공기 비즈니스석은 근사했다. 비스듬한 반원형으로 배치된 좌석은 다리를 뻗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했다. 모니터는 앞좌석 등받이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그마한 개인 사물함에는 생수병과 함께 실내용 양말, 안대, 간단한 세면도구도 들어 있었다.

앙증맞은 비닐 지퍼 백에 든 치약은 아껴 쓰면 여행 내내 쓸 정도로 넉넉해 보였다. 치약 뚜껑을 열자 입구가 플라스틱으로 봉해져 있었다. 뚜껑 바깥쪽으로 솟아 있는 송곳 모양으로 뚫으면 될 터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몇 번이나 힘껏 눌러 보았지만 구멍은 나지 않았다. 치약과 칫솔을 손에 든 채 한동안 멍하니 기내 화장실 거울을 보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펩시 로고
<펩시 로고>

2006년 인드라 누이가 펩시코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했을 때 누구도 긴 여정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12년 동안 펩시만의 혁신을 주도했고, 디자인만큼 자주 언급한 용어도 없다.

2015년 인터뷰에서 질문을 던졌다. 물론 변덕스러운 소비자를 상대하는 비즈니스다. 보통 동전 한두 개로 살 수 있는 제품인 데다 포장은 비닐 백이나 플라스틱 병이 대부분이다. “당신에게 디자인은 왜 그렇게 중요했나요.”

이 질문에 누이가 말하는 디자인은 조금 달랐다. 별다르게 디자인이라고 부른 적 없던 일에서 디자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첫째 스테레오 타입을 깨는 것이다. 어느 사업, 어느 제품이든 경쟁이란 있기 마련이다. 경쟁에 매달리다 보면 가뜩이나 비슷한 제품을 비슷한 포장에 담아 비슷한 가격에 팔게 된다. 누이는 코카콜라와 탄산음료로 직접 경쟁하는 대신 펩시를 '펀 포 유'에서 '굿 포 유' 비즈니스로 바꾸려 했다. 펩시에는 이른바 빌리언 달러 브랜드가 20여개나 된다. 제품을 금방 바꿀 도리는 없다. 새로운 펩시를 알리는데 디자인만한 선택도 없었을지 모른다.

둘째 소비자와 교감하는 통로다. 빅데이터를 많이 말하지만 실상 소비자 입맛만한 빅데이터도 없다. 모든 차이를 다 반영할 수는 없지만 작은 캔을 내놓는 것으로 소비자들은 교감한다.

제품 포장도 허투루 보지 않았다. 남자들은 과자 부스러기를 봉투째 입에 대고 털어 넣지만 여성의 선택은 다르다. 맛이 다르면 포장을 바꾸기 마련이었지만 같은 맛이라도 소비자가 다르다면 포장이 달라야 한다고 봤다. 소비자를 만나는 방식을 바꾸는 것도 디자인이다.

셋째 새로운 제품을 차별화해서 보여 줄 때다. 마운틴듀, 킥스타트는 기존보다 날씬하게 캔을 디자인했다. 80칼로리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 가운데 이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겠는가. 매출이 어려운 탄산음료 시장에서 2억달러어치를 판다는 것은 꽤나 성공한 일이다.

꽤 여러 번 사용할 수 있을 법한 치약은 여행객에게 아주 고마운 선물이지만 힘껏 눌러도 구멍이 나지 않는 뚜껑을 보면서 당황해 한 마음은 디자인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보여 준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그러나 디자인이 그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누이가 찾은 디자인은 단지 포장지와 라벨을 바꾸는데 있지 않았다. 제품 개발이기도 했고 소비자와 교감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한번 생각해 보자. 내게 디자인은 어떤 의미로 기억되고 있을까. 혹 소비자를 직접 대하지 않는다고 디자인은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쩌면 이런 생각 자체가 스테레오 타입은 아닐까.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