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디스플레이 투자 '묻지마'서 '옥석 가리기'로

지방정부 부채비율 낮추기 위해 심의 깐깐해지고 기간 길어져

중국 디스플레이 업계 투자 분위기가 '묻지마식'에서 '옥석 가리기'로 변하고 있다. 중국 중앙 정부가 지방정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한 정책을 펼치면서 투자 심의가 전보다 깐깐해지고 기간도 길어졌다. 디스플레이 시장에 새로 뛰어드는 기업에 투자하기보다 이 분야에서 성과를 검증받은 상위 기업 중심으로 투자를 이어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디스플레이 투자 시장에 여러 변수가 등장하면서 과거와 같은 공격적 투자 기조가 주춤해졌다. 지난해와 올 상반기까지 공격적 투자를 집행하며 '디스플레이 굴기'를 과시했으나 대내외 경제환경 변화, 디스플레이 시장 침체 등 영향으로 경쟁력을 검증받은 기업에 투자를 집중하는 분위기로 변했다.

국내 디스플레이 장비기업과 중국 전문가 등 의견을 종합해보면 최근 중국 지방정부 투자 심사 기간이 길어지고 은행 대출심사도 까다로워졌다.

중국 패널사는 새로운 공장을 지을 때 총 투자비 대부분을 정부 투자금과 은행 대출로 충당한다. BOE의 경우 10.5세대 공장을 지을 때 총 투자비 400억위안 중 실제 BOE가 지불한 현금은 40억위안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정부가 180억위안, 은행 대출 180억위안을 집행했다. 공장을 짓고 가동률을 높이면서 생산량을 늘리면 일정 성과에 따라 정부가 인센티브도 지급한다. 영업 활동에서 적자가 발생해도 정부 인센티브를 반영하면 영업이익 흑자로 바뀌는 구조가 된다.

이처럼 중국 패널사가 정부 지원금에 기대는 것은 크다. 하지만 각종 첨단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하면서 부채비율이 상승함에 따라 최근 투자 기조가 변했다.

中 디스플레이 투자 '묻지마'서 '옥석 가리기'로

가장 큰 변화는 신규 기업 진입이 까다로워졌다는 점이다. 7.5세대 액정표시장치(LCD) 투자를 준비했던 AHZ는 이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홀리텍은 5.5세대 리지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아몰퍼스실리콘(a-Si) LCD 공장 투자를 계획했지만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알려졌다.

쿤테크(Shanxi Kuntech)는 폴더블 OLED 기술을 공개하고 6세대 플렉시블 OLED 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업계는 실제 투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봤다. 8세대 LCD 생산 후발주자인 HKC는 10.5세대 투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실제 집행 움직임은 아직 없다.

이에 비해 기존 상위권 제조사는 기존 투자 계획을 별 이상없이 준비하는 모습이다. 투자 시기가 몇 개월가량 밀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프로젝트가 취소되는 수준은 아닐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룬다. 플렉시블 OLED 추가 투자를 준비하는 BOE, 차이나스타, 비전옥스, 에버디스플레이, 티안마 등 이미 OLED를 생산하고 있거나 투자한 기업은 상대적으로 투자 위축 기조에서 자유로운 분위기다.

다만 과거부터 막연하게 투자 가능성이 점쳐지던 일부 프로젝트는 실현 시기가 지연될 여지가 커졌다. BOE 6세대 플렉시블 OLED B15, 티안마의 우한 OLED 프로젝트, 비전옥스의 플렉시블 OLED V4 프로젝트 등이 거론된다.

중국 상위 기업 투자 일정이 불투명해지는 이유 중 하나로 내년도 중소형 플렉시블 OLED 업황이 예상보다 좋지 않을 가능성이 꼽힌다. 애플 아이폰 OLED 물량이 예상보다 적고 부품 단가가 높아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가 리지드 OLED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중국에 세계적 규모로 성장한 기업이 다수 등장한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높일만한 기업 중심으로 지원하는 정책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봤다. 이에 따라 과거와 같은 묻지마식 투자가 아닌 세계 선두로 올라설만한 기업에 자원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선회했다고 분석했다.

국내 장비 업계는 중국 투자기조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국내 패널사 신규 투자가 한정돼 있어 중국에서 성장기회를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장비기업 관계자는 “중국 패널사의 투자 감소 우려가 계속 제기되고 있지만 주요 상위 기업에서는 이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며 “다만 전보다 양산 성적을 높이기 위한 기술 검증에 더 공들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른 기업 관계자는 “피부로 느낄만한 중국 투자시장 위축 움직임은 없다”며 “국내 장비기업이 현지에서 검증된 상위 제조사 중심으로 영업하고 있어 내년에 위기로 볼 만한 상황은 크게 없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