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축적의 열쇠를 찾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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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몇 해 전부터 위기론이 제기된 국내 자동차 산업에 결국 빨간불이 켜졌다. 현대자동차 올해 3분기 영업 이익은 시장 기대치를 크게 밑돌았고, 영업이익률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조선 산업은 아직도 어려운 상황이고, 한국을 대표하던 스마트폰 명성도 옛 이야기가 돼 가고 있다. 수출 물량이 감소하던 디스플레이 산업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세계 1등, 3등 기업이 이끌고 있는 반도체 산업은 최고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관련 업체는 오히려 긴장하는 분위기다. 언제까지 성장세가 이어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17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올해까지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R&D) 예산이 0원으로 수렴되다가 지난 7월에서야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위해 10년 동안 1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이 나왔다. 그러나 정부 예비타당성 검토를 통과하더라도 예산은 2020년 이후에나 투입될 예정이다.

청와대도 문제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축적의 시간' '축적의 길'을 탐독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축적의 시간'은 2015년 서울대 공대 석학 26명과 인터뷰한 내용을 기반으로 발간된 책으로, 한국 산업 문제점을 드러내고 발전을 위한 제언을 담았다. 책이 지적한 문제 핵심은 우리나라 산업이 시행착오 경험을 축적할 시간이 부족했고, 그 결과 개념 설계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후속작으로 발간된 '축적의 길'에서는 우리의 경험과 지식을 축적해 나갈 전략을 제시했다.

경험과 지식을 어떻게 잘 축적하느냐는 결국 사람과 시스템에 달려 있다. 고도의 지식과 많은 경험을 쌓은 인재, 우리는 그들을 '고수'라고 부른다. 이런 고수가 모든 산업 경쟁력 원천이어서 대학과 산업 현장에 많이 포진해야 한다. 세계는 고수를 영입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다. 우리가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이런 고수를 우리 사회 핵심 자산으로 인정하고 우대, 그들이 대한민국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이런 고수로 기르기 위해 우리는 청년에게 좋은 교육 기회와 환경을 제공하고, 시행착오를 감내할 수 있는 안전망을 조성해 줘야 한다. 시행착오를 통한 경험은 기술 발전 밑거름이 되고, 신성장 산업 뿌리가 될 것이다. 정부 인력 양성 사업, R&D 사업 방향도 논문·특허·취업률 따위 단기 정량 성과가 아니라 훗날 경쟁력 있는 고수로 기르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

중국공정원은 세계 어느 나라 아카데미보다 엄격한 자격을 요구하고, 그에 걸맞은 세계 최고 예우를 해 준다. 대학·연구소·민간기업 따지지 않고 특별수당을 지급함은 물론 퇴직 후에도 일정 부분 급여를 제공, 지속 활동을 보장한다.

원사의 축적된 경험치를 활용해 연구의 방향을 정하고 정책 수립시 도움을 받기 때문에 국가는 시행착오를 줄여나갈 수 있다고 한다.

미국도 두려워한다는 '중국 제조 2025' 계획은 중국 고수에 의해 탄생했다.

올해 두 차례 중국공정원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33개 성마다 연구센터를 세우고 각 원사 연구를 지원, 그들 제언을 정부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민간 전문가 의견이 정부 정책에 반영되는 시스템도 놀랍지만 충분한 예산이 있어서 8개 센터는 올해 이미 개소했다는 그의 자신감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축적의 길'에서 밝혔듯 중국은 최고 고수가 쌓은 경험과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선진국에 비해 짧은 축적의 시간을 넓은 공간과 엄청난 물량으로 극복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많은 고수가 있지만 정부가 그들 목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축적의 열쇠'를 찾았는지 한번 묻고 싶다.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 okwon@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