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라크네와 애플

최재필 전자신문 통신방송부 기자.
최재필 전자신문 통신방송부 기자.

애플이 야심 차게 내놓은 신형 아이폰XS(텐에스), 아이폰XS 맥스, 아이폰XR(텐아르) 판매가 부진하다. 애플은 생산 물량을 하향 조정하고, 일본에서는 이례로 이동통신사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폭스콘 등 아이폰 조립·부품 협력사는 수조원에 이르는 예산을 삭감하고 인력을 줄이는 등 아이폰 위기를 현실에 반영했다. 세계 시가총액 1위 '애플'이 예전 같지 않은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애플은 아라크네를 연상케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라크네는 베 짜는 솜씨가 뛰어나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재주를 지닌 소녀였다. 베 짜는 솜씨는 여신 아테나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고'라는 자부심에 취해 겸손함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만방자한 아라크네는 아테나 저주를 받아 거미로 변했고, 베 짜는 솜씨를 더 이상 뽐낼 수 없었다.

애플은 2007년 '아이폰'이라는 혁신을 내놓으며 변화를 선도했다. 소비자는 애플을 신뢰했고, 신제품이 출시되는 날이면 강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밤새 대기했다.

그러나 애플은 '최고'라는 자부심에 취해 겸손함을 잊었고, 결국 신형 아이폰 판매 부진이라는 위기를 초래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200만원에 육박하는 신형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하루 1달러꼴에 불과하다”는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다. 애플을 믿고 따르던 소비자는 하나 둘 등을 돌렸다.

국내에서 애플 불공정 관행은 끊이질 않았다. 애플이 이통사 대리점에 수백만원에 이르는 시연폰 구매를 강요한 것이 드러났다. 애플은 아이폰X(텐) 디스플레이 결함을 인정하면서도 불편을 겪은 소비자에게 “죄송하다”는 말은 어김없이 빠뜨렸다.

소비자를 경시하는 애플의 위기는 자명하다. 터무니없이 비싼 아이폰을 내놓고 사후서비스(AS) 개선은 여전히 뒷전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 했다. 애플이 최고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쇄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최재필기자 jp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