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크]램프 패러다임의 전환, 헤드램프 빛에 지능을 입히다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도로 위를 달릴 때면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 두려운 마음에 상향등을 켜서 안전하게 시야를 확보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마주 오는 차량이나 앞서가는 차량 운전자가 눈부심에 불편할까 걱정돼 상향등을 켜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지능형 헤드램프(ADB) 작동 시뮬레이션 (제공=현대모비스)
지능형 헤드램프(ADB) 작동 시뮬레이션 (제공=현대모비스)

야간 운전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위와 같은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헤드램프 기술의 혁신적 발전으로 항상 상향등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전방 차량 부분만 빛을 차단해 상대 운전자의 눈부심을 막는 지능형 헤드램프(ADB·Adaptive Driving Beam)가 개발됐기 때문이다.

그간 헤드램프 기술의 역사는 '무엇으로 빛을 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광원 기술과, '어떻게 빛을 내보낼 것인가'에 대한 광학 설계 기술의 발전사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러 기능이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램프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어떻게 더 안전하게 시야를 확보하면서도 상대 운전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널리 적용되고 있는 가변형 전조등 시스템(AFLS·Adaptive Front Lighting System)이 대표적이다. AFLS는 차량의 속도와 조향 핸들의 각도, 차량의 기울기, 도로의 상황 등에 따라 전조등 방향을 상하좌우로 조절해 최적 조명 상태를 제공한다. 다만 차량 내부 정보만을 바탕으로 빛을 조절하기 때문에 상대 차량의 눈부심을 차단해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상향등 제어장치 (HBA·High Beam Assist)다. HBA는 상향등으로 주행하다가 전방에 차량이 나타나면 자동으로 하향등으로 전환하고, 차량이 없으면 다시 상향등을 켜주는 장치다. 차량 백미러 부분에 장착된 카메라 센서가 전방 차량의 불빛을 감지하면, ECU가 상향등을 자동으로 제어한다.

HBA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것이 최근 등장한 ADB다. 이는 계속해서 상향등을 껐다 켜는 HBA와는 달리 항상 상향등 상태를 유지하고, 전방 차량이 있는 부분만 빛을 차단한다.

ADB는 두 개의 타입으로 나뉜다. 두 개의 광원을 전동장치로 조절해 그림자를 형성하게 하는 스위블 타입과 여러 개의 LED 광원을 활용해 차량이 감지되면 해당 부위를 비추는 램프만 일시적으로 꺼주는 매트릭스 타입이 그것이다. 매트릭스 타입은 스위블 타입보다 정밀하고 미세한 빛 조절이 가능해 현재는 거의 모든 업체가 매트릭스 타입의 ADB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안분리대 구간제어
중안분리대 구간제어

이런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현재 ADB는 몇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전방 카메라 센서로만 차량을 인식하는 현 방식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우선 뒤에서 빠르게 추월하는 차량 움직임을 감지하는 것이 늦어져 추월차 운전자의 눈부심을 야기할 수가 있다. 또 S자 곡선로와 같이 전방 차량과의 위치 변화가 극심한 경우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고속도로나 국도에 중앙분리대가 있는 경우, 마주 달려오는 차량의 불빛을 인식하지 못해 상향등 불빛을 그냥 전개하는 문제도 있었다. 운전석 위치가 낮은 일반 차량의 경우 상향등 불빛이 중앙분리대에 막혀 운전하는데 큰 무리가 없지만 운전석이 높은 곳에 위치한 버스나 트럭 등 상용차는 눈부심에 노출될 수가 있다.

현대모비스는 최근 다른 운전자지원기술(ADAS)와의 연계를 통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한 첨단 지능형 헤드램프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전방 카메라 센서뿐만 아니라 레이더, 내비게이션, 조향각센서 등에서 정보를 추가 수집해 더욱 정밀하게 빛을 조절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후측방 사각지대 감지장치(BCW)로 후측방에서 추월하는 차량 정보를, 내비게이션으로 고속도로와 국도 등의 차로 정보를, 조향각 센서로 커브길 곡률 정보를 파악해 상대 차량 움직임을 미리 예측해 제어하는 방식이다.

추월차 예측제어
추월차 예측제어

ADB는 특히 미래 자율주행 시대에 필수 장치로 부상하고 있다. 야간 주행 시 차선이나 표지판 등 자율주행에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램프 패러다임이 전환됨에 따라 업계 지도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그 동안 헤드램프는 빛을 조절하고 다스리는 광학기술의 집약체로서 유럽과 일본 등 선진 램프업체가 기술 발전을 주도해왔다. 하지만 최근 지능형 헤드램프는 상대 차량을 감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만큼 센서 등 인지기술을 갖춘 종합 자동차 부품사에 더 큰 기회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류종은 자동차/항공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