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43>어깨를 짚다

글자 작게 글자 크게 인쇄하기

밸류체인이란 가치사슬을 뜻한다. 제품 개념 설계부터 소비자에게 전달하기까지 수행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글로벌 경제에서 이 활동은 세계 규모로 짜인다. 그래서 글로벌 밸류체인 또는 약자 GVC로 부르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스티브 크론스는 이날도 무거운 마음으로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 시내에 위치한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었다. 1985년 설립된 라파엘 인더스트리는 몇 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고객 가운데에는 GE헬스케어도 있었지만 고장 난 엑스레이 튜브를 수리하는 일거리만 있었다.

오래간만에 밀워키 시내에 들른 그에게 동료가 “고객과 한번 의논해 보는 게 어때” 하고 말한다. 며칠 후 용기를 내 들른 GE에서 뜻밖의 얘기를 듣는다. “안 그래도 이 지역에서 의료영상기기 파트너가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답니다.” 이 계약으로 매출은 10배가 됐고, 무엇보다 더 이상 로컬기업이 아니라는 의미기도 했다.

IBM 디렉터 티머시 코츠에게 수많은 기업이 묻곤 했다. 글로벌 기업 공급망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가 핵심이었다. 코츠의 대답은 간단하다. 그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첫째 불편할 정도까지 투명하라. IBM만 봐도 공급사가 되려면 140개가 넘는 사전 질문부터 답해야 한다. 푸에르토리코에서 PACIV란 바이오제약 기업을 막 설립한 호르헤 루이스 로드리게스에게 물어 봐도 좋다. 투명성이 생명인 제약산업에서 신뢰는 생명이다. 그는 고객인 엘리 릴리에게 모든 것을 공개하기로 한다. 노무비, 재료비, 이윤은 물론 자신의 개인 소득세 신고서까지 공유했다. PACIV 경영 투명성은 곧 퍼졌고, 경쟁자들이 뛰어넘을 수 없는 기준이 됐다.

둘째 고객 요구에 투자하고 혁신하라. 2004년 실리콘밸리 벤처 붐에 IBM은 엔지니어를 뺏기고 있었다. 이런 IBM의 고민을 듣자 해럴드 밀스 제로카오스 최고경영자(CEO)는 빠듯한 예산을 짜내 '블루 다이렉트'라는 IBM 전용 인력 포털을 구축한다. 1년 반 후 무려 20만명의 엔지니어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었다. IBM과 파트너십이 만든 제로카오스 기업 가치는 30억달러에 이른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셋째 고객의 필요를 활용하라. IBM 같은 큰 고객이 있다면 고민거리도 많기 마련이다. 콜린스 컨설팅은 고객에게 문제가 있다면 기꺼이 풀어내겠다고 말하곤 했다. 어느 해 KPMG가 국방성 사업을 따내자 IBM은 콜린스를 추천한다. “자신의 경쟁우위를 지키기 위해 당신을 활용하게 만들라.”

넷째는 특별한 끈기, 다섯째는 적응 문화 만들기였다. 하르켄은 무려 100개가 넘는 포천 500 기업에 사업 제안을 한 후에야 첫 고객을 만들 수 있었다. 트롤테크도 마찬가지다. 기업 문화가 개방된 이 노르웨이 기업조차 일본의 글로벌 제조사 요구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내에선 '지옥이 만든 프로젝트'라 불리기도 했다.

GVC가 주는 성장 기회는 크다. 성공 사례도 많다. 한 조사는 2년 평균 250% 성장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번 곰곰이 따져 보자. 우리가 과연 코츠가 말한 이 다섯 가지 금도만이라도 지킬 수 있을까.

글로벌 기업의 파트너가 되는 것은 거인의 어깨를 빌리는 것과 같다. 단지 한 가지 조언이 있다. “그 전에 당신이 먼저 해야 할 일이 조금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