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경기도 얼어붙었다…삼성·SK, 반도체 장비 투자 줄줄이 미뤘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평택 반도체 1라인 외경<전자신문DB>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평택 반도체 1라인 외경<전자신문DB>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시설투자를 미루고 있다. 반도체 경기가 하강 국면에 들어서면서 투자 전략을 보수 형태로 바꿨다. 삼성전자는 사상 처음으로 구두 발주한 물량 입고 일정을 늦췄다. SK하이닉스도 내년 투자액을 올해보다 수조원대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가 불확실한 경기 전망 속에 수익 경영에다 초점을 맞춰 내년도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셈이다. 장비업계는 비상사태를 맞았다. 올해 디스플레이 시설 투자가 급감한 가운데 내년에 반도체 투자마저 줄면 '보릿고개'를 각오해야 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평택공장 2층에 월 2만장 규모 D램 라인을 조성하기 위해 장비를 구두 발주했다가 최근 반입 일정을 미뤘다. 당초 내년 1분기 반입을 목표로 주요 장비 기업에 장비 제작을 요청했지만 이를 미룬 것이다.

삼성전자는 신규 반도체 라인을 조성할 때 주요 장비 기업에 구두로 제품 제작을 요청해 왔다. 일정에 맞게 장비를 안정 확보하기 위해서다. 정식 공급 계약은 실제 구두 발주일로부터 수개월이 지나서 맺곤 한다.

업계에 따르면 다수 장비 제조사가 삼성전자 D램 장비 제작을 의뢰받아 내년 1분기 반입 목표로 제품을 제작해 왔지만 최근 이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비 입고 일정이 미뤄진 데 따른 것이다.

장비 기업 관계자는 “구두로 물량을 발주해 준비하고 있다가 입고 일정 지연 연락을 받고 진행을 중단했다”면서 “새로 조정한 일정은 알려주지 않아서 상황만 지켜보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기업 관계자 역시 “장비를 만들다가 중단했다”면서 “입고 취소보다는 3~6개월 늦춰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납기 일정 지연에 대한 보상 등 후속 논의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장비 입고 지연은 내년 삼성전자 반도체 설비 투자 감소를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입고 지연된 설비는 당초 평택공장 2층 D램 라인을 꾸리기 위한 물량이다. 투자 규모는 1조~1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부문에 사상 최대인 27조3000억원을 투자했다. 올해는 3분기까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합쳐 약 22조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평택 D램 라인, 시안 낸드 투자 지연 등으로 설비 투자 감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도 내년도 투자 규모를 올해 대비 3조~4조원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내년도 삼성전자 설비 투자 규모를 180억달러(약 20조1700억원)로 예상했다. 올해보다 20% 줄어든 수치다. SK하이닉스 투자 규모는 올해보다 22% 줄어든 100억달러(11조2070억원)로 내다봤다.

투자 축소는 불확실한 내년도 메모리 시장 때문이다. 최근 고정거래 가격이 하락하면서 내년도 메모리 시장에 공급 과잉이 우려된다. 실제 모바일과 서버용 D램 수요는 고점을 찍은 후 조금씩 하락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 수요 증가로 업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최근 미-중 무역 갈등까지 겹쳐 어느 때보다도 불확실성이 커졌다.

반도체 업계는 일단 시장을 관망하면서 투자 일정을 조정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해 역대 최대 실적이 예상됨에도 최근 인사에서 임원 승진 폭을 좁힌 것도 불확실성이 커진 시장 현황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검증된 기존 임원을 중용,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도가 깔렸다.

장비 기업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 기업 투자 감소로 다수 기업이 내년 실적 성장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면서 “시장 상황에 따라 내년 하반기부터 설비 입고가 늘어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선 불안감이 크다”고 진단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 오대석기자 od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