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한국지엠 법인 분리 찬성·기술계약 재편..."10년간 준중형 SUV R&D 거점"

한국지엠(GM) 2대 주주 산업은행이 한국지엠 연구개발(R&D) 법인(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 주식회사) 분리에 찬성했다.

이번 신설 법인을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및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R&D 거점으로 삼고 10년 동안 R&D 물량을 배정하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해당 내용에 대한 법률 구속력 확보에는 실패했다. GM 본사가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 주식회사에 연구 물량을 배정하지 않아도 이를 법률로 제재할 수단이 없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산업은행이 가처분소송 승소로 일부 유리한 조건은 얻었지만 결국 GM에 굽히고 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18일 한국지엠테크니컬센터 설립 건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산은은 지엠 측과의 협상 과정에서 한국지엠에 △신설 법인을 준중형 SUV 및 CUV 중점 R&D 거점 지정 △앞으로 10년뿐만 아니라 그 이상 지속 가능성 보장 위한 노력 △추가 R&D를 위한 경쟁력 확보 등 총 세 가지 조건에 합의했다.

이 회장은 “신설 법인을 준중형 R&D 거점으로 지정함으로써 생산 법인 경영 안정화에 기여하고, 국내 협력 업체가 신차 개발에서부터 프로젝트에 참여해 산업 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그동안 GM 본사에서 관련 사업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아 가처분소송까지 제기했지만 최근 베리 엥글 지엠 총괄부사장으로부터 모든 자료를 받아 외부 전문 연구기관과 함께 검토했다”고 밝혔다.

당초 GM 측은 이달 3일을 분할등기 예정일로 공시했지만 산은이 제기한 법인분할 가처분 소송으로 연기됐다. 산은은 지난 10월 가처분소송 승소로 다소 유리한 조건을 끌어올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 주주 간 분쟁 해결 합의 내용에 대한 법률 구속력은 확보하지 못했다. 이 회장은 “10년 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자동차 산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GM 한국 생산 여부를) 보장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면서 “(법률 구속력이 없다는 게) 미진하다고 말할 순 있지만 생산법인이나 연구법인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미래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재편된 계약에서 한국지엠이 테크니컬센터에서 개발되는 지식재산권 무상 사용을 보장하지 못한 점도 미진한 부분으로 남는다. 같은 날 산은은 GM과 체결한 비용분담협정(CSA)이 만료됨에 따라 기술 계약도 재편했다. 신설연구법인개발법인과 GM기술회사 간 '엔지니어링 서비스 계약', 신설생산법인과 GM기술회사 간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이 회장은 “기존 CSA 만료로 사용권까지 본사에 귀속시키고, 대신 '엔지니어링 서비스 계약'을 유리하게 끌고 왔다”고 설명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노조는 이에 반발해 19일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총 8시간 파업에 나선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GM지부는 18일 중앙쟁의대책위원회를 열고 부분 파업을 포함한 투쟁 일정을 정했다. 19일 전체 조합원 1만1000명이 전반조와 후반조로 나눠 각각 4시간씩 파업한다. 앞서 노조는 사측 법인분리 결정에 맞서 파업권한을 포함한 쟁의권 확보에 나섰지만 불발됐다.

이번 합의에서 산은이 얻어낸 이익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웅철 국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협력업체가 신차 개발 단계에서부터 참여하는 방안을 장점으로 내걸었지만 비용을 절감하지 못한다면 GM에서는 얼마든 합의를 뒤집을 수 있다”면서 “GM과의 합의 하나하나에 의미를 둘 것이 아니라 국내 자동차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거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함지현기자 goh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