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세계 10대 창업국가를 꿈꾸며

배성철 UNIST 산학협력단장(생명과학부교수)
배성철 UNIST 산학협력단장(생명과학부교수)

세계 스타트업 정보 분석 기업 '스타트업 게놈'은 2~3년을 주기로 '세계 창업 생태계 순위'를 발표한다. 여기에는 도시별 창업 생태계 상황을 비교한 자료도 포함돼 있다.

최근 나온 2017년 순위에서 우리나라 창업을 대표한다는 서울과 판교는 20위권에도 들지 못 했다. 창업 선도 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 지표다.

희망은 있다. 대한민국 산업 수도로 불린 울산이 제조 노하우를 기반으로 새롭고 다양한 신기술 창업을 활성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및 자동차와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으로 우리나라 경제 성장을 이끌어 온 울산은 조선·해양플랜트를 시작으로 자동차 산업까지 부진하면서 지역 경제 전체가 침체 상태에 빠졌다. 울산 산·학·연·관은 '하이테크 창업'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신기술 개발과 이를 이용한 기술 창업 활성화에 전력을 쏟고 있다.

지난해 12월 19일 서울 코엑스에서 울산과학기술원(UNIST) '유 파인더 데이'가 열렸다. 이 행사는 스타트업에 투자 유치를 연계, 안착과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기술설명회이자 데모데이다. UNIST 학생과 교수가 설립한 10개 스타트업이 보유 기술과 사업화, 성장 전략을 발표했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척추나 망막을 치료하는 '냉각마취법', 질병을 조기 진단하는 '게놈 분석'은 인류의 꿈인 '무병장수'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는 하이테크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바닷물을 이용한 해수전지는 친환경 에너지 산업의 미래를 주도할 혁신 제품이다. 사용자 움직임을 인식하는 '소프트 글러브' '색체 감성공학' 등은 우리 삶을 크게 바꿔 놓을 놀라운 기술과 제품이 이날 공개됐다. 행사에 참석한 벤처캐피털을 비롯한 투자 관계자는 면면이 인류 미래를 바꿔 놓을 혁신 기술이라고 호평했다.

혁신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사업화, 창업으로 이어 가려면 대학은 물론 공기관과 정부의 창업 지원 사업이 뒷받침돼야 한다.

UNIST는 개교 초부터 교내 연구개발(R&D) 성과 사업화에 주력했고, 2014년에 첫 번째 창업 기업 배출 후에는 기술 기반 창업 활성화에 적극 나섰다. 창업 지원 및 투자 기관과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국내 대학 최초로 민간 액셀러레이터를 교내에 입주시켰다. 금융투자사, 지역 금융그룹, 창업 전문 지원 기관과 협약을 맺고 민간 주도 스타트업 성장 및 투자 지원 네트워크인 'UNIST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현재 UNIST에는 31개 교원 창업, 40개 학생 창업 등 총 71개 스타트업이 활동하고 있다.

UNIST는 '2030년 세계 10위권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이라는 비전과 목표를 세웠다. 이에 맞춰 교내 유망 창업 기업을 유니콘으로 길러서 UNIST가 주도하는 글로벌 신산업과 신시장을 일굴 계획이다. 미국, 유럽 등 해외 협력 네트워크를 확대하면서 앞으로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첨단 기술 중심으로 창업을 활성화하고, 나아가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 경제권 및 금융권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스타트업 성장을 뒷받침한 사례를 본보기로 삼고 있다.

제조업 기반이 탄탄한 울산을 근거지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UNIST는 이스라엘보다 유리하다. 혁신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대량 생산이라는 사업화로 이어 가기 위해 강력한 제조 인프라는 크나큰 장점이다.

미국은 1990년대, 일본은 2000년대 들어 국가 차원의 창업 지원을 본격화했다. 우리나라는 2010년대 중반에 시작해 아직 걸음마 단계다. 앞으로 10~20년을 바라본 장기 관점에서 정책을 입안하고, 신기술이나 융합 기술에 기반을 둔 혁신 기술 창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투자를 연계해 체계를 갖춘 사업화 지원이 지속 필요하다.

제조 기반이 튼튼한 울산에서 혁신 기술로 무장한 젊은 창업 기업이 글로벌 신산업을 주도하며 '세계 10대 창업국가' 토대를 만들 날을 기대한다.

배성철 UNIST 산학협력단장(생명과학부 교수) scbae@un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