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 칼럼] 대통령과 사무관

글자 작게 글자 크게 인쇄하기
[김상용 칼럼] 대통령과 사무관

광해군이 물었다.

“당장 (임금이) 시급하게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가?”

성균관 유생 임숙영이 답했다.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대답하겠습니다. <중략> 임명장이 내려오기 전에 미리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이 누가 될지 어림짐작합니다. '아무개는 중전 친척이고, 아무개는 후궁 겨레붙이다. 지금 아무개 관직에 자리가 비어 있으니 반드시 아무개가 될 것이고 아무개 고을에 수령자리가 비어 있으니 반드시 아무개가 될 것이다'라고 합니다. 실제로 임명장이 내려오는 것을 보면 거의 그 말대로 됩니다. <중략> 나라를 다스리고 정치를 보좌하는 것은 재상에게 맡기고 적을 물리치고 난리를 평정하는 일은 장수에게 맡기며, <중략> 행정을 펴서 자애롭게 어루만지는 일은 수령에게 맡기십시오.”-김태완의 <책문>중에서 요약

1611년 광해군 3년 별시 문과 논술시험 '책문'에서 사달이 났다. '책문'은 임금이 고시합격자에게 '정략'과 '대책'을 묻는 논술시험이었다. 인사청문회와 비슷했다. 요즘 청문회가 가족사를 캐거나, 음주나 병역 등을 조사하는 것과는 달리 '정책'에 집중했다. 출제자는 임금이었고 응답자는 고시합격자 33명이었다. 책문 시험 결과에 따라 종6품부터 종9품 벼슬을 받았다. 사무관을 뽑는 행정고시라 할까.

행시 합격자 임숙영 붓끝은 날카로웠다. 조상이 애써서 일궈온 국정을 함부로 망치지 말고 낙하산 인사 하지 말라고, 분야별 전문가를 뽑아 역할분담을 시키라고.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이었다. '이쯤되면 막가자는 얘기'였다. 광해군은 답안지에 진노했다. 임숙영을 과거시험에서 빼라는 명령을 내렸다.

[김상용 칼럼] 대통령과 사무관

역사는 가슴 아프게 되풀이 한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권 모두 한결 같았다. 집권 후에 전 정권 역사와 정통성을 부정했고 한번 쓴 인재는 전 정권사람이라며 내팽개쳤다. 수백년 이어가야할 국가 철학과 정책을 뒤집었다. 교육정책, 과학기술정책, 산업정책, 경제정책, 국방정책을 정권 교체기마다 뒤집었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도 자신의 정치적 편향에 따라 또 고쳤다. 역사 앞에서도 교만했다. 어떤 정권은 자신이 교만한지도 몰랐다. 40년 '반정'의 역사였다.

주인공 대답은 한결같았다. '유능한 인재를 채용했으며 낙하산 인사는 없다'였다. 전 정권에서 내려보낼 때는 낙하산이었지만, 자신이 보낸 사람은 낙하산이 아니라 전문가였다고 떠들었다. 낙하산 인사가 난무한다고 떠든 '임숙영'은 버르장머리 없는 사무관에 불과했다.

언론사에는 하루 동안 정보보고 수백개가 올라온다. 이중 10분의 1이 누가 입각하는지, 모 기관장(長)은 어떤 인사가 내정됐다는 내용이다. 절반가량 맞아 떨어진다. '○○는 △△와 캠프에서, 당에서 일했더라'는 정보는 정확도가 높다. 전문성, 추진력은 예나 지금이나 뒷전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낙하산 인사는 진행형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그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부정하겠지만, 국민 눈높이에서는 여전하다. 지난번 그 기관이 그랬고, 지금 돌고 있는 소문 당사자가 그랬다. 기회는 균등해야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캠코더'라 해서 기회와 과정, 결과가 기울어서는 안 된다.

2019년 1월, 30대 사무관 임숙영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묻는다.

“낙하산 인사는 없습니까?”

김상용 주필 sr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