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한국 경제, 죽어야 산다

[데스크라인]한국 경제, 죽어야 산다

을씨년스런 새해다. 희망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벽두부터 터진 '애플 실적 쇼크'는 전주곡이다. 삼성전자는 7년 만에 스마트폰 생산 목표치를 3억대 아래로 잡았다. 10년 동안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르네상스를 이끈 간판스타마저 지고 있다. 믿은 반도체 경기도 빠르게 꺾이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이 잉태한 고통은 올해 더 심해질 것이다. 혹독한 겨울이 시작됐다.

2019년 한국 경제는 어떤 길을 가야 할까. 내리막길이 확연한 상황에서 목표치만 올리는 건 공허하다. '새해'라는 감성과 관성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냉정해져야 한다. 올해는 한국 경제가 바닥을 치는 해다. 어떻게 추락할 것인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전략이 중요하다.

좋은 일화가 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판매량이 처음 3억대를 돌파한 2013년에 게임업계에도 빅뉴스 하나가 터졌다. 모바일게임 1호 기업인 컴투스가 후발 주자인 게임빌에 팔렸다. 스마트폰 열풍으로 모바일게임 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의외의 뉴스였다. 컴투스 창업주는 경영난에 육아 고민까지 겹치자 용단을 내렸다. 당시 컴투스 시가총액은 2900억원 남짓이었다.

최대 주주는 매각 대금으로 700억여원을 손에 쥐었다. 그런데 1년 후 컴투스 시가총액은 무려 1조7000억원으로 6배나 불어났다. 게임빌이 인수한 뒤 출시한 모바일게임 '서머너즈 워'가 글로벌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헐값에 회사를 넘긴 컴투스 창업주를 안타까워했다.

한편 게임업계에서 은퇴한 한 최고경영자(CEO)가 완전히 상반된 분석을 내놨다. 컴투스가 게임빌에 팔리지 않았다면 '서머너즈 워'는 성공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컴투스가 되살아난 것도 역설적으로 컴투스가 죽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컴투스 임직원은 회사가 다른 회사에 팔리는 막다른 길에 몰리자 정신이 번쩍 들었고, 혼신을 다해 게임 개발과 마케팅에 매달렸으며, 그것이 글로벌 대박으로 이어졌다는 논리였다. 컴투스 부활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상당히 일리 있는 주장이었다.

한국 경제도 올해 살기 위해 죽었으면 좋겠다. 확실하게 바닥을 쳐야 더 높게 튀어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기금(IMF) 금융 위기, 리먼 브러더스 사태 등 굵직한 경제 위기가 닥친 뒤 한국 경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산업계 체질이 바뀌고, 시민의식도 성숙해졌다.

부활을 위한 바닥 치기에는 조건이 있다. 기업마다 회복 탄력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위기 이후 성장을 담보할 인재와 연구개발(R&D) 역량은 비축해야 한다. 컴투스를 인수한 게임빌 경영진도 구조 조정보다 기존 R&D 프로젝트를 보장했다. '서머너즈 워'가 대박을 터뜨리고, 컴투스 부활이 가능하게 된 힘도 여기서 나왔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다. 스마트폰과 롱텀에벌루션(LTE) 시대가 저물지만 5세대(5G) 이동통신이라는 강력한 성장 엔진이 떠오르고 있다. 드라마틱한 반등이 기다리고 있다.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요즘 기업이 너무 단기 성과에 연연하는 것이다. 실적 악화로 시설 투자를 줄이거나 미루는 일이 종종 목격된다. 인력 채용 계획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제대로 된 바닥 다지기가 아니다.

바닥을 향해 달리는 한국 경제는 고무공일 수도 유리공일 수도 있다. 하나는 더 높이 튀어 오를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닥에 닿는 순간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2019년, 우리는 어떤 바닥 치기를 해야 하는가.

장지영 미래산업부 데스크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