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용 칼럼]경쟁이 키우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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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용 칼럼]경쟁이 키우는 사회

'경쟁'은 나쁜 것이라고 배웠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에서 배운 건 경쟁이 가져다주는 폐해였다. 경쟁을 벌인 사람 중 하나는 패배자였고, 하나는 승리자였다. 따라다니는 단어도 부정적이었다. 약육강식, 욕심, 약탈, 승자독식, 적자생존 등이었다. 경쟁은 불평등을 낳는 원인이었다. 불평등한 우리나라는 '분노해야' 할 대상이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도 자주 지껄였다. 매달 성적경쟁을 벌였고, 등수를 매겼다. 입시시험은 물론 신체적 능력을 점수화하는 '체력장'까지 했다. 옆 학교와 야구와 축구전쟁을 치르고, 학교 서열을 놓고도 다퉜다. 경쟁률이 수백대 일인 입사시험도 치러야 했다.

사회도 그랬다. 매주 성과를 요구받았고, 연말 인센티브도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받았다. 승진을 위해 시험도 봤다. 동료와 경쟁했다. 회사 밖도 마찬가지였다. 특허마케팅 문제로 소송을 벌였고, 미국 CES에서 목숨을 걸고 신제품 홍보전쟁을 벌였다. 경쟁에서 지면 사업부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경쟁에서 진 어느 기업은 10년이 넘도록 '북해의 불타는 플랫폼 위에서' 사투를 벌였다. 경쟁에서 밀린 직원은 보따리를 쌌다. 경쟁은 무서웠다.

그 시절 '협동'은 얼마나 아름답고 따뜻했는지 모른다. '협동'은 우리를 유혹했다. 힘을 합쳐 목표를 이루자고, 경쟁하지 않아도 우리는 먹고 살 만하다고. 경쟁하지 않으면 격차가 없고 차별이 없다고 팔목을 잡아 당겼다. 경쟁에 찌든 우리는 '협동'에 끌렸다. 아, 경쟁하지 않는 사회는 얼마나 감동적인가. 경쟁은 자본주의 폐해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환상이 깨진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소련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중국이 자본주의 경쟁체제를 도입했다. 언론에 비춘 이들 국가는 가난에 찌든 1950~1960년대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인민'은 상상외로 가난했다. 이성이 없는 우상의 국가에서는 상아탑 사상과 정권을 향한 비판도 자유롭지 못했다. 삶은 평화롭지 않았다.

경쟁하지 않는 사회는 나태했다. 산업과 서비스 발전이 없었다. 경쟁하지 않는 사회는 독재와 독점, 안일과 나태가 난무했다. 사회주의 국가는 입출국심사 때 뒷돈을 공공연히 요구했다. 경쟁하지 않는 권력은 부패했다. 세금과 분배로 살아온 중남미 국가는 부도위기에 몰렸고, 성장판이 닫혔다. 경쟁하지 않으면 국가도 도태된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경쟁은 진화론 핵심이다. 인류는 다른 종(種) 또는 자연과 경쟁하며 살아왔다. 지금도 유효하다. 국가가, 기업이, 자영업체가 경쟁하지 않으면 모두 도태된다. 시간은 길지 않다. 1960년대 우리보다 잘살던 선진국가가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제니스, 닌텐도, 코닥, 노키아가 그랬다. 세계 100대 가전기업 중 100년을 살아남은 기업은 거의 없다.

경쟁 반대편에 독점과 독재, 배타적 권한이 있다. 철밥통이 있다. 권력이 경쟁을 막는 법을 만들 때 독재와 독점이 생긴다. 독재와 독점은 기업과 국가 성장을 막는다.

우리 사회는 이제 경쟁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경쟁이 부도덕한 게 아니라 기업을 강하게 만들고, 성과를 높이려 하고, 기술혁신을 유도한다는 것을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경쟁하지 않고 독점과 독재를 강요하는 권력과 법제에 저항해야 한다. 경쟁력은 불평등의 근원이 아니라 사회 변혁을 이끄는 진보적 힘이라는 것을 외쳐야 한다. 대한민국을 만든 동력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김상용 칼럼]경쟁이 키우는 사회

주필 김상용 sr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