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2019년, 게임의 질병 공식화 원년이 될 것인가?

[ET단상]2019년, 게임의 질병 공식화 원년이 될 것인가?

기해년 새해가 출발했다. 희망과 기대로 시작한 여타 해와 다르게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5월 세계보건총회에서 게임장애를 등재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만 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제가 '질병'인지 문화 적응이 필요한 과도기 이슈인지는 전혀 다른 성격이다. 필자는 게임장애의 공식 질병화가 우리 사회와 문화를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고 믿는다.

게임장애는 게임중독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흔히 게임장애라 하면 게임중독을 다르게 부르는 용어로 인식되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도자 의원(바른미래당)이 게임장애를 다루며 '게임중독 예방 부담금 부과'를 주장한 것이 단편 사례다.

중독은 '금단현상'과 '내성'이라는 특성을 띤다. 그리고 신경 계통 퇴행을 유발하는 객관화된 증거가 나타나야 한다. 게임을 중단한다고 해서 손 떨림이나 경련, 구토, 불면 같은 금단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 게임을 할수록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재미가 줄어든다는 점에서 내성도 없다. 진정 금단현상과 내성이 있다면 어떻게 서비스를 중단하는 게임사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게임을 하면 전두엽이 망가져 '짐승뇌'가 된다는 게임 뇌 이론도 폐기된 지 오래다. 게임이 신경 계통 퇴행을 불러들인다는 증거보다 긍정 효과를 보여 주는 증거가 훨씬 더 많다.

이렇듯 지난 20여년 동안 실시해 온 게임중독 연구는 증거를 밝혀내는 데 실패했다. 연구를 할수록 더욱 세분되고 분명해져야 하는 것이 과학 진보다. 그런데 질병으로서의 게임 연구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당연히 객관화된 진단 기준도 효과 높은 치료 방법도 불명확한 상태다.

그 사이 게임은 세계의 20억명 이상 남녀노소가 즐기는 대중문화로 성장했다. 영화와 음반 산업을 능가하는 문화 산업이다. e스포츠는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 됐다. 국제대회 금메달을 따고 국위를 선양하는 종목이 된 것이다.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밤낮없이 매달려도 될까 말까다. 잠재력이 우수한 유망주와 도움이 필요한 환자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게임의 질병 공식화는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이도 함께 버리는 것과 같은 자해 행위다.

객관화된 사실이 아닌 대중의 막연한 공포를 근거로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공식화할 때 나타나는 심각한 부작용은 다시는 회복이 불가능한 치명타로 작용한다. 사람들이 병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혐오 반응이 무의식으로 나타난다. 좋은 게임인지 나쁜 게임인지 자세히 살펴볼 겨를도 없이 얼굴이 찌푸려지고 뒷걸음질 치게 만든다.

4차 산업혁명 핵심 동력이라는 게임이 졸지에 마녀가 되는 것이다. 게임장애를 보건의료계 이슈로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료계 개입이 필요한 질병 공식화 대신 사회 공론과 지혜를 모으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소설, 영화, 만화, TV, 로큰롤 등 한때 젊은이 층의 인기를 끈 많은 신생 문화는 사회 갈등 원인으로 지목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별문제 없이 잘 적응해서 지내고 있다. 이런 문제는 치료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적응할 수 있는 관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마시멜로 테스트'는 인내심이 아이 미래 성공을 예측해 주는 중요한 요인임을 밝혔다. 사회도 마찬가지 아닐까. 게임이라는 마시멜로를 우리 사회가 얼마나 기다리고 참을 수 있는가는 미래 우리 사회의 가능성을 탐색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다. 게임장애가 기회를 날리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 zzazna01@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