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디지털 세상, 그리고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데스크라인]디지털 세상, 그리고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갈등과 치유, 관계를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것 가운데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우화가 있다.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파레르가 운트 파랄리포메나(Parerga und Paralipomena)'라는 책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한글로 번역하면 '소품과 단편집' 정도로 해석된다. 삶에 관한 상념을 적은 가벼운 수필 수준의 글이다. 국내에는 '희망에 대하여'라는 번역서로 출간되기도 했다. 책에 소개된 고슴도치 우화는 이렇다.

고슴도치들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서지만 가시로 서로를 찌르기 때문에 다시 떨어지는 것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다. 우화는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적절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많이 인용된다. 여기서 적당한 거리는 훌륭한 매너를 의미한다. 우리식으로 따지면 예의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어디 한 곳 조용한 데가 없다. 대립, 분열, 반목, 불신이 횡행한다. 세대·성별·계층 간 혐오와 갈등이 넘쳐나는 시대다. 서로 피를 튀겨 가며 총칼로 싸우지 않을 뿐 이념·성향에 따른 격전이 매일 치열하게 전개된다. 예의 없는 세상이다. 특히 디지털 세상이 시공간의 벽을 허물면서 혐오와 갈등은 실시간으로 더 쉽게 확대 재생산된다. 여기에 익명성이라는 온라인 공간의 특성이 더해지면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번져 간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젠더 갈등이나 다양한 사건이 이와 무관치 않다. 이수역 폭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어느 한 편의 잘못을 떠나 순식간에 두 편으로 갈라져서 온 나라가 들썩이며 시끄럽다. 마치 서로에게 상처를 내는 고슴도치 가시와도 같이 상대 공격에 바쁘다. 상대가 없어져야 끝날 것 같은 극한으로 치닫기도 한다.

나도 가시에 상처받을 수 있는 고슴도치의 하나라는 사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최근 거칠게 쏟아내던 말이 며칠 지나지 않아 그대로 본인에게 되돌아오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디지털화된 세상에서는 한 번 내뱉은 말이나 글은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다. 까맣게 잊힌 오래 전 일이 어제 일처럼 되살아나 나를 찔러 온다. 그 대상은 평범한 개인에서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의원까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누구든 적당한 거리를 지키지 않아 서로 상처를 내는 고슴도치가 될 수 있다. 나 그리고 우리의 예의 없음이 만든 현실이다. 디지털 세상이 우리 사회의 혐오와 갈등을 더 키우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사회에 디지털 문화, 온라인 매너 등 논의가 시작된 건 이미 오래전이다. '선플' 달기운동 등 다양한 활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온라인 세상은 정제되지 않은 말과 글로 넘쳐난다. 오히려 갈등이 더 커졌다. 예의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익명성과 시공간을 파괴한 디지털 특성이 만들어 낸 결과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 서로의 가시에 찔리지 않고 서로의 온기로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우리 사회가 적절한 거리를 찾는 고슴도치의 시행착오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올 한 해는 우리 각자가 어떤 이슈가 벌어지게 되면 적정한 거리를 두고 잠시 관망해 보길 제안한다.

홍기범 금융/정책부 데스크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