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석의 新영업之道]<15>갑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빅데이터를 버려라

[이장석의 新영업之道]<15>갑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빅데이터를 버려라

최근 한 기관의 장으로 부임한 지인이 신년 인사차 만난 자리에서 고민을 얘기했다.

“우리 기관이 다양한 단체 및 정부 기관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수행하는 곳이어서 서비스에 대한 고객 평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평가 결과에 따라 담당자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 고과와 임직원 고과 급여가 결정되고, 예산까지 영향을 받으니까요. 그런데 거의 모든 평가 점수가 만점에 가까워서 그 평가를 신뢰할 수가 없어요. 고객의 실제 만족도가 그렇게 높을 수 없지요.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고민입니다.”

모든 '을'은 '갑'의 얘기를 귀 담아 듣고 싶어 한다. 민간기업, 공공기관 구분 없이 대부분의 기업과 단체는 다양한 형태로 끝없이 고객만족도를 조사한다. 서비스나 제품에 대한 고객의 냉정한 평가를 듣고 문제점 등을 수집해서 더욱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을'의 당연한 행동이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를 통한 독립 및 객관화한 조사 설문과 달리 '갑'이 한정되고 명확한 경우에는 평가 결과가 대부분 '팩트'와 다르다.

그럼에도 의미 없는 이벤트는 아직까지 반복되고 있다.

얼마 전 전화기를 교체했다. 쓰고 있던 전화기에 문제가 생겨 급히 교체하는 것이어서 시간 여유가 없었다. 상황 설명, 기기 결정, 서류 작업, 교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나와 달리 영업직원에게서는 절실함이 그리 보이지 않았다. 시종 무표정한 영업직원을 보면서 요즘 젊은이의 '쿨'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작업이 끝나고 매장을 나서려는 순간 앉은 자세로 나를 응대하던 직원이 꾸벅 인사를 하면서 하던 말이 떠오른다.

“통신사에서 전화 드리면 오늘 서비스에 만족하셨다고 말씀해 주시길 부탁합니다.”

뭐하러 하는 것일까?

자신에게 부정 반응을 보이는 고객, 잘 모르는 고객은 설문 대상에서 제외시킨다. 관계가 좋은 고객, 평소에 관리가 잘됐다고 생각하는 고객만을 서베이 대상으로 등록한다. 설문 시기가 되면 사전에 선처(?)를 부탁하는 작위성 설문 결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만족도 점수로 진실을 왜곡시키고, 그것을 빤히 알면서도 점수에 모든 것을 함몰시키는 어리석은 짓은 수십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기관 평가 그룹이 있어요. 그들을 무시할 수 없어요. 당연히 평가단과 잘 지내야 하고, 좋은 평가를 받도록 해 준 평가단원이 어떤 과제를 제안하면 도와주게 되지요.”

좋은 취지의 제도를 하나의 현상으로 무시하거나 배척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불필요하고 잘못된 제도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조작된 숫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갑'의 진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 고객을 만나고, 고객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진심으로 듣고자 하는데 어떤 고객이 거짓을 얘기하겠는가. 인정에 치우쳐서 후한 점수를 주는 '갑', 그것으로 진실을 호도하는 '을'이 이런 잘못을 만들고 있다. 책상 앞에서 리포트만 보고 현장을 판단하는 조직의 '갑', 즉 리더들은 이것을 방조하는 것이다.

빅(BIG)데이터 늪에서 헤어나라.

조직의 '갑', 리더가 부풀려지고(Bubble) 가공된(Imaginary) 쓰레기(Garbage) 데이터에 의해 진실을 덮지 말아야 한다. 고객 접점을 하나하나 늘리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접근할 때 이런 허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을'의 변화와 미래를 위해 인정을 생각하기보다 '잘못'을 적시하고, '바뀌어야 할 것'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갑'이 '을'을 진정으로 살리는 것이다.

이동 중 즐겨 듣는 방송의 DJ가 수줍은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요즘 청취율 조사를 하고 있어요. 혹, ××로 시작되는 전화를 받으시면 무조건 우리 프로그램을 주로 듣는다고 얘기해 주세요.”

두 번 반복해서 말하는 것을 애교로 듣고 넘길 수 있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기관장의 고민을 듣고 열을 올리다가 돌아오는 길에 듣는 멘트여서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이장석 한국영업혁신그룹(KSIG) 대표 js.aquina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