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교수포럼의 정책 시시비비]<34>기술사업화가 R&D 선순환 동력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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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정부 전체 연구개발(R&D) 예산이 최초로 2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보다 3.7% 증가한 것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이른바 'R&D 집약도'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기도 하다. 2008년도에 10조원을 넘어선 후 불과 10년여 만에 두 배가 된 R&D 예산을 한편 반기면서도 과연 투자만큼 성과를 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은 다시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고민의 시작은 R&D 정의부터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C)에 따르면 '연구'란 새로운 과학 및 기술 지식과 이해를 얻기 위해 행해진 계획된 독창 성격의 조사를 말한다. '개발'이란 상업 생산 혹은 이용 이전의 새롭거나 상당히 개량된 재료, 장치, 제품, 공정, 시스템 또는 서비스 생산 계획과 디자인에 연구 성과 및 여타 지식을 적용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요컨대 R&D는 연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구가 자동차 앞바퀴와 뒷바퀴의 주행 기능을 얼마나 최상으로 유지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라면 개발은 구동 장치를 어느 바퀴에 장착해서 험로를 평지와 같이 주행할 수 있도록 하느냐다. 정의만을 본다면 우리가 무언가를 'R&D'라고 말한다면 연구를 통해 축적한 과학 지식을 경제 가치로 만드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것이 R&D 투자 대비 성과를 묻는 이유다.

성과는 여러 가지로 따질 수 있다. 논문·특허·사업화 성과를 기준 삼아 보면 2016년 현재 정부 R&D의 SCI(E) 논문 성과는 3만7385건, 국내 특허출원은 3만807건, 해외 특허출원은 4923건, 사업화는 2만6584건이다. 이 가운데 경제 가치 창출에 가장 근접한 사업화의 경우 10억원당 1.39건으로 사뭇 왕성해 보이지만 기술료를 받는 것은 8865건이고 징수액은 2664억원 정도다.

이것을 문제라고 지적하고 그치는 대신 우리 R&D 과정에서 개선해야 할 점은 없는지, 유독 기술 사업화 과정에 직면하게 되는 데스밸리가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구조화되고 고착화된 문제는 두 가지로 수렴된다.

첫째는 분절된 R&D 체계다. 주변 기관을 한번 보자. 우리 경우 유독 기관 특성화와 본연의 기능을 강조한다. 그러니 연구기관은 연구기관대로, 실용화 기관이나 사업화 기관은 그 나름대로 각자의 역할에 몰두한다. 중복 타파를 부르짖은 결과는 파편화와 현상 안주였다는 자책이 그래서 나온다.

둘째는 자금 부족이다. 이처럼 R&D 예산이 늘어나는 동안 사업화에는 여전히 자금이 걸림돌로 남아 있다. R&D에는 100을 쓰지만 그 나머지 모든 과정에는 10을 쓰는 구조만큼은 근본에서 전혀 변화가 없다. 금융권 담보보증 비율은 여전히 높고, 우리 창업 초기 기업에 대한 벤처투자액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절반을 조금 넘었다는 국내 증권사 분석도 있다.

정부는 올해 정부 R&D 예산 가운데 공공연구 성과의 창업 사업화를 포함한 4차 산업혁명 대응 전문 인력 양성 등 명목에 지난해보다 16.2% 증가한 1조원 이상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하니 듣던 중 다행이다.

이제 남은 것은 선택이다. 공공연구기관의 벽은 허물어야 하고, 마치 대학의 '상아탑'을 닮은 본연의 기능이라는 틀 안에 가두는 대신 경쟁을 촉진하고 기관의 새 역할을 마음껏 찾아낼 수 있도록 북돋아야 한다.

연구, 개발, 기술사업화라는 삼박자가 갖춰지지 않으면 제대로 된 혁신 물꼬가 트일 수 없다. 미래 성장 동력 창출이나 경제 위기 대응이라는 명제에서 R&D 투자 당위성을 찾아서는 안 된다. 이것이 해답이라는 우리 자신의 확고한 믿음과 성공 모델이 있어야 한다.

◇ET교수포럼 명단(가나다 순)=김현수(순천향대), 문주현(동국대), 박재민(건국대), 박호정(고려대), 송성진(성균관대), 오중산(숙명여대), 이우영(연세대), 이젬마(경희대), 이종수(서울대), 정도진(중앙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