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실용주의' 中 가전, 무시할 수 있나

[기자수첩]'실용주의' 中 가전, 무시할 수 있나

“CES에 출품된 신제품은 소비자의 99%가 바로 사지 않는다. 우리는 1%의 소비자가 아닌 99%의 소비자를 잡겠다.”

올해 초 열린 CES 2019 기자간담회에 나온 TCL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시장의 99% 소비자는 2000달러(약 223만원) 이하 TV를 구매하고 있다는 발표 직후다. 합리적 가격에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중국 회사의 전략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기자는 직접 TCL, 하이얼, 하이센스, 캉자(Konka) 등 중국 유명 가전사 부스를 방문했다. 전시 포인트가 달랐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서비스 로봇, 자율주행, 롤러블 TV와 같은 첨단 기술에 초점을 맞췄다. 전시장을 감싼 거대 디스플레이는 관람객을 압도했다.

중국 제조사 부스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신기술과 제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8K TV, 친환경 세탁기(TCL), 의류 건조 기능을 갖춘 스마트 옷장과 스마트 신발 건조기(하이얼), 가정용 미용기기(창훙)가 그나마 인상 깊었다. '우와' 소리가 나올 만 한 첨단 제품은 없었다.

다만 그들은 철저히 실용적이었다. 럭셔리가 아닌 매스티지를 부각시켰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만듦새는 훌륭했다. 소비자가 실질적으로 구매를 고려할 수 있는 제품군을 전면에 내세웠다.

나름대로 품질은 괜찮아 보였다. 중국 브랜드에 대한 다소 부정적 인식에도 매달 가계부를 신경 써야 하는 소비자에게는 '살 만 하겠다'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였다. 중국산 가전 공습이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만 현장에서 느낀 위세는 무시하기 어려웠다.

해를 거듭할수록 중국 제조사의 저가 매스티지 전략은 먹혀들어가는 모양새다. 우리 선도 기업은 프리미엄 1%를 향하고 있다. 좋게 말하면 고급화 전략이지만 반대로 보면 중저가 시장에서 중국 제조사에 밀릴 것이라는 우려도 생긴다. 동급 제품 간 기술 격차는 일반 소비자가 체감하기에 그리 크지 않다. 더욱이 중국 가전사는 앞으로 선두권 업체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볼 것이다.

CES 출장 동안 국내 기업의 기술력에는 거듭 감탄했다. 한편으로는 실제 판매 시장에서 위상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