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규모 2조원', 신규 규제 커트라인에 울고 웃는 중견상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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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규모 2조원 이상 대규모 상장사가 올해 새롭게 도입되는 각종 제도 변화에 시름하고 있다. 기업지배구조 의무공시에 이어 표준감사시간 제도까지 연내 시행이 예고되면서 대규모 상장의 내부통제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필두로 한 행동주의 펀드의 압박까지 더해지며 대기업 집단뿐 아니라 중견기업까지도 지배구조 개선 압박에 직면했다.

29일 금융위원회 및 한국공인회계사회(이하 한공회) 등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은 기업지배구조 공시 의무 대상이 된다. 표준감사시간 제정안이 최종 공표되는 다음달 이후에는 이들 기업은 올해부터 즉시 연간 3000시간 안팎의 감사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 역시 즉시 시행된다.

한공회에 따르면 2017년말 기준 개별자산 총액이 2조원 이상인 상장사는 총 156개로 전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20%에 이른다. 2018년도 사업보고서 제출이 완료되는 이달 이후에는 의무 적용 대상이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실제 이사회 심의·의결사항,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의 분리, 사외이사와 지배주주·경영진 등 간의 이해상충 여부 등을 기업지배구조 공시에 기재하지 않을 경우 불성실 공시법인 지정 등 각종 제재를 받게되는 만큼 주요 대기업은 일제히 내부통제 제도 재편에 한창이다.

자산총액 2조원을 훌쩍 넘긴 대기업은 이미 지배구조 개편에 들어갔다. 증권가에서는 롯데지주, 한진칼, 현대그린푸드, 대림산업 등을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주주 친화 정책이 기대되는 종목으로 꼽고 있다.

다만 더 큰 문제는 대기업 집단이 아님에도 자산총액 2조원을 넘긴 중견기업이다. 이미 감사위원회 설치 등 기존 규제가 있는 상황에서 기업지배구조 의무공시, 표준감사시간 제도 즉시 시행 등 추가 부담으로 각종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한 중견기업 재무담당 임원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에 더해 기업지배구조 재편, 표준감사시간 제도 도입까지 한꺼번에 규제가 일제히 시행되면서 준비가 부족한 중견기업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면서 “이미 증권시장으로부터 추가 자금 조달 가능성도 적어진 상황에서 상장에 따른 부담만 더해지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로 농심홀딩스 등 일부 중견기업은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서 행동주의펀드의 주요 타깃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상장사가 감사·감사위원 선임 시 지배주주가 의결권이 있는 주식 3%만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한 규정 등에 따라 소수 주주의 공격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주요 사업회사인 농심은 자산규모 2조원을 넘기는 만큼 각종 내부통제 부담에도 노출될 수 있다.

최근 KCGI 등 행동주의펀드의 경영권 공격이 시작된 한진칼은 반대 사례다. 한진칼은 최근 단기차입금 조달을 통해 자산규모를 2조원 이상으로 불렸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기업에는 감사위원회 선임이 의무화되는 만큼 사외에서 감사위원을 선임할 수 있다는 점을 역이용했다. 2017년말 기준으로 한진칼 자산 규모는 1조9252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추가 규제 부담을 우려한 중견기업의 사업 분할이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중견기업계 관계자는 “한진칼을 비롯 경영경 승계 등 각종 이슈가 있는 중견기업 대다수가 감사위원회 의무 지정 등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자산총액을 불리지 않고 사업 분할에 나서는 경우가 있어왔다”면서 “스튜어드십코드 시행이 본격화할 경우 중견 상장기업이 추가 성장을 꺼리는 피터팬 증후군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