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일본 소재 기술의 저력

[기자수첩]일본 소재 기술의 저력

지난 1월 30일 일본 도쿄 빅사이트 내 한 식당에 국내 나노 관련 산·학·연·관 관계자 40여명이 모였다. 이날 개막한 세계 최대 나노기술 전시회 '나노테크 2019'에서 보고 느낀 점을 교환하고 배울 점은 무엇인지 논의하기 위해 나노융합산업연구조합이 마련한 자리였다.

일본은 소재 기술 대표 강국이다. 기술 개발도 꾸준하다. 이날 참석자들 역시 일본의 높은 나노소재 기술 경쟁력에 다시금 감탄하며 부러움을 표시했다. 한 참석자는 “나노테크에서 선보인 소재가 몇 년 후에는 동시에 개최되는 신기능성소재박람회, 인터아쿠아, 제이플렉스, 에넥스 등 전시회에 신제품으로 등장하며 잘 연계되고 있다”면서 “기술 개발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신소재 로드맵을 만들고,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이화학연구소(RIKEN) 같은 연구소가 각 기업 및 대학과 교류하며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일본의 소재 기술 저력 원천을 분석했다.

한국은 주력 산업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산업 등의 경쟁력은 높지만 관련 소재 공급망은 취약하다. 조만간 국내 기업이 처음으로 대량 생산하는 폴더블폰 핵심 소재인 투명 폴리이미드(PI)의 초도 물량 공급사가 일본 기업으로 결정된 것이 대표 사례다.

대기업 관계자는 “첨단 기술을 접목하려 해도 한국 내 기반 기술을 갖춘 기업이나 연구소가 부족하다 보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한다. 그러는 사이 일본 소재 대기업은 한국에 공장을 세워서 삼성, LG 같은 대기업을 공략하고 있다.

소재 사업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개발을 시작해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기까지 5년은 기본이다.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시장이 열리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돈도 많이 든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다. 특성을 크게 향상시킨 소재 기술 기반 없이는 반도체, 바이오·헬스, 5세대(5G) 이동통신, 전기자동차,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미래 기술의 성능 향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소재 기술 경쟁력을 기르는 것은 한 개인이나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는 장기 안목으로 정책을 짜고, 필요한 곳에 제대로 지원해야 한다. 수요 기업은 국내 소재 기업이 확보한 기반 기술을 잘 살펴서 제품으로 상용화 될 수 있도록 협업해야 한다. 경영진과 투자자에게는 소재 기술이 무르익을 때까지 지켜보는 긴 호흡과 인내심이 덕목으로 요구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한국 나노기술의 비약 발전은 죽었다 깨어나도 어려운 이야기”라는 자조 섞인 기업인의 한탄이 몇 년 후에는 자신감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정현정 배터리/부품 전문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