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차등의결권, 급한 불부터 끄자

[기자수첩]차등의결권, 급한 불부터 끄자

벤처기업 투자의 숨통을 터 줄 '벤처 차등의결권' 제도가 시험대에 올랐다. 임시국회가 열리면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차등의결권 법안이 논의된다. 여당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8월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조정식 정책위원회 의장이 휴일인 10일 차등의결권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하며 힘을 보탰다. 차등의결권은 외부 투자 유치에 따른 창업자 지분율 하락으로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다.

법안 통과는 불투명하다. 찬반이 팽팽하게 맞선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조심스러운 행보가 보인다. 야당은 물론 진보 진영 시민단체조차 우려를 표하기 때문이다. 반대 주장은 정치와 제도 두 가지 영역으로 갈린다. 제도 이슈는 쉽게 풀릴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주주 평등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는 보통주보다 배당 우선권이 있는 우선주가 허용된 주식시장 상황에 비춰 보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비상장사에 한해 도입한다면 이 같은 논란은 잠재울 수 있다.

벤처캐피털(VC)이 투자를 꺼릴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기우에 불과하다. 오히려 창업주 지분이 낮은 회사일수록 투자 유치에 불리하다. 창업주 발언권이 약할수록 회사 성장 동력이 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분율이 20% 아래로 낮아진 창업주의 회사를 떠나는 사례가 빈번하다.

창업주의 도덕성 해이를 걱정하기도 한다. 이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해석이다. 자본이 움직이는 투자 시장은 냉혹하다. 차등의결권이 도입돼도 투자자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각종 계약 규정을 삽입, 창업자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다만 정치 이슈는 뼈아프다. 대기업 포함 여부를 넣고 여야 간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벤처기업으로 대상을 한정시키는 것은 차별이라는 의견이 야당 일각에서 제시됐다. 시민단체 역시 이 점을 미리 염려, 대기업으로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벤처기업만 답답하게 됐다. 차등의결권 도입이 당장 급하지 않은 대기업 문제 때문에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를 혁신 성장 골든타임으로 꼽는다. 그런데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3분의 2가 도입한 차등의결권 제도를 우리는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다. 민감한 숙제는 다음에 느긋이 풀면 된다. 지금은 벤처기업 투자 활성화에 정치권이 힘을 모을 때다.

최종희기자 choi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