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딜레마에 빠진 억지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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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라인]딜레마에 빠진 억지 정책

요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정규직화 문제다. 특히 청소 노동자로 대변되는 용역 파견직의 정규직화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출연연 측에서는 각 기관이 공동 출자하는 형태로 자회사를 꾸려서 채용하겠다는 안을 제시했지만 공공연구노조 측에서는 직고용을 고수, 파업까지 불사하며 결사반대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말에 이어 오는 3월 또다시 파업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사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는 처음부터 예산 지원 없이는 답이 보이지 않는 고용 시장 문제다. 더욱이 용역 파견직은 대부분 연령대가 높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가는 곧바로 퇴직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정년을 넘긴 나이여서 계속 근무하려면 특혜를 주거나 출연연 정년을 대폭 연장해야 한다.

정부가 기존 직원과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사전 조치를 내리지 않고서는 풀 수 없는 실타래와 같다.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서로 자기 요구만 되풀이해서는 갈등만 증폭될 뿐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다루기 어려운 과제가 된 듯하다. 어떤 형태로든 빨리 마무리만 됐으면 하고 바라는 눈치다. 책임은 고스란히 출연연 몫으로 남았고, 그만큼 출연연 부담만 커졌다. 예산은 지원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정규직화라는 요구만 하다 보니 딜레마에 빠진 전형 사례가 됐다.

정부가 3년 전부터 지역 주도 균형 발전을 위해 추진해 온 지역 혁신 거버넌스 구축 사업도 비슷한 사례다. 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중소벤처기업부 등 부처가 각각 운영해 온 지역산업 육성 정책기관을 통폐합해서 지방자치단체에 이관, 지역 산업 혁신을 주도할 컨트롤타워로 기능하게 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이었다. 산업부 산하 지역사업평가단,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지원단, 중기부 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이 대상이다.

의도는 좋았다. 지자체도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지자체별로 지역혁신협의회를 구성, 다양한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계획은 도처에서 암초를 만났다. 각 부처가 예산과 권한을 내려놓지 않으려 하면서 진척은 안 됐다. 해당 기관의 반발도 거셌다.

결국은 유야무야 용두사미로 흐르는 분위기다. 지역 산·학·연 대표를 모아 협의회까지 구성하며 기다렸지만 3년 가까이 아무런 권한도 받지 못한 상태가 돼 눈치만 살피고 있는 형국이다. 지역 산업을 주도해서 육성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꿈에 부풀었다가 헛물만 켠 모양이 됐다. 곳곳에서 “물 건너갔다”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예산과 권한을 둘러싼 미묘한 알력을 간과한 탓이다.

처음에는 거창하거나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결과는 흐지부지되거나 사회 갈등을 야기하는 국가 정책이 적지 않다. 전후 사정을 두루 살피지 않고 방향을 설정하거나 시행 과정에서 분야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원칙만 고수하다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정책 입안자 입장에서는 모든 상황에 일괄 적용할 수 있는 정책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는 많은 다양성이 존재한다. 이를 무시하고 억지로 추진하는 정책은 무리가 따르고,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출연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가 대표 사례다. 정책을 마련했으면 수행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줘야 한다. 권한과 함께 예산이 동반돼야 추진 동력이 생긴다. 더 이상 안 되면 말고 식의 부담 떠넘기기가 돼서는 안 된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